젊은 층 중심의 개혁파 지지를 업고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이 28일 보수 이슬람 강경파에 정면 도전장을 냈다. 사법권 및 군 통수권과 입법 최종 승인권 등 막강한 권력을 갖고 정부의 개혁 정책을 번번이 좌절시킨 혁명수호위원회를 겨냥해서 이날 대통령 권한 강화 방침을 공언한 것이다.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다. 이번 조치가 법규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여전히 혁명수호위원회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하타미가 보수파에 밀리는 처지가 계속 될 경우 경제난으로 불만이 가득한 민심의 이반이 더욱 커져 현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보수파 정면 돌파 선언한 하타미
하타미 대통령은 이날 테헤란에서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청해 이란의 사회·정치 개혁을 확고히 추진하기 위해 자신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회(마즐리스)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란을 위한 가장 안전하면서도 합법적인 선택은 종교와 자유를 모두 존중하는 '이슬람 민주주의'이며 이것이 국민들에 대한 나의 약속"이라며 "신의 의지에 따라 나는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내 임무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일도 헌법과 국민의 의지를 벗어나서 일어나지는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대화와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세심하게 노력했지만 불행히도 성공하지 못했다"며 이슬람 강경파에 직접 책임을 물었다.
하타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보수강경파가 지배한 사법 당국이 최근 수개월 동안 60곳의 개혁 성향 신문·잡지를 발행 금지하고 수십 명의 사회개혁 운동가들과 야당 정당원들을 투옥한 데 대항해 이뤄진 것이다. 그동안 언론과 정당 활동의 자유 등 국민들의 분출하는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사법부 규제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는 등 정부가 기울인 노력은 혁명수호위원회 때문에 매번 무산됐다.
■대통령 권한 강화 가능성 낮아
하지만 하타미가 보수파와의 정면 대결에 당장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개혁파가 장악한 의회에서는 대통령 권한 강화 법안이 통과하겠지만 최종 입법에는 역시 혁명수호위원회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 과거에도 수차례 개혁 입법 통과를 저지한 적이 있는 수호위원회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약화한 대통령 권한을 되돌리려는 시도에 찬성할 리 만무하다.
이럴 경우 이란의 정치·사회 상황은 급속히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이슬람 강경파에 저항하는 젊은 층과 여성 중심의 개혁 세력들이 하타미 정권에마저 실망하면서 그 분노를 집단시위 등으로 표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달 테헤란에서는 수천 명의 학생·시민이 혁명 후 최대 시위였던 3년 전의 학생 시위를 기념하는 가두 행진을 벌였다.
정부 산하 여론 조사기관이 5월에 테헤란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현 체제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49%로 지난해 2월 조사보다 14%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개혁 성공에 대한 믿음이 벌써 상당히 약해진 데다 5년 전에 비해 2배 넘게 늘어난 실업률(14%) 등 경제난까지 겹쳐 이란의 사회 상황은 앞으로 상당 기간 혼미할 전망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美, 對이란 여전히 강경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대 이란관은 여전히 강경 일변도이다. 개혁 성향의 하타미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함에도 불구하고 테러 단체 비호, 대량살상무기 개발·보유 등의 혐의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란 내부에서 이라크 공격의 연장선에서 이란에 대한 제한적 공격의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미국의 공격에 대비한 국가비상사태 선포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것은 부시 정부의 이같은 이란 정책에서 직접 비롯한 것이다.
하지만 하타미 대통령은 28일 이란은 대 미국 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없다며 대미 관계 개선 의지를 간접적으로 피력했다. 미국의 테러리스트 비호 혐의를 벗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이란 정부가 6월에 알 카에다 혐의자 16명을 사우디 아라비아로 추방한 것은 직접적인 대미 관계 개선 의지의 표시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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