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깊어만 가는 對北 우울증

입력
2002.08.30 00:00
0 0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지 일주일이 다 돼가지만 북한만 생각하면 이내 우울해진다. TV에서 북한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거나 북한 관련 뉴스를 들으면 가슴 한 쪽이 미어지는 것만 같다. 극과 극이 양존하는 북한의 모습을 동시에 보고 왔기 때문이다. 대동강을 끼고 있는 평양의 아름다운 외형과 가난과 궁핍에 찌든 함경도 시골의 모습이 중첩된다.평양 거리를 호기있게 달리는 스웨덴제 2층 관광버스와 함경도 산골짜기 비포장 비탈길을 숨을 헉헉대고 올라오던 목탄차가 동시에 눈에 어른거린다. 길이가 2㎞나 되지만 불하나 켜져 있지 않았던 함관령터널의 처참한 모습과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 기념궁전으로 가는 금릉터널의 휘황찬란함이 머리를 혼돈스럽게 한다. 평양 만수대 창작사에서 그림을 사가라며 농담을 서슴지 않던 고운 자태의 여성과 함경도 신포에서 철로보수작업에 나서 삼태기에 돌을 이고 나르던 비쩍 마른 아낙네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골치를 지끈거리게 한다. 평양의 만경대 학생 소년궁전 앞에서 마주친 붉은 스카프를 두른 북한의 어린이는 서울의 여느 어린이와 별 차이가 없었다. 볼에 뽀얗게 살이 올라있었고 걸음걸이도 씩씩했다. 그러나 함경도 신포와 함흥에서 본 어린이들의 상당수는 한 눈에 봐도 영양실조에 걸려 있음이 확연했다. 퀭한 눈에 시커먼 얼굴을 하고 피골이 상접한 경우가 많았다.

과연 어느 게 북한의 참모습일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분노가 치솟는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고, 국민은 무엇 때문에 국가에 충성해야 하는지를 새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기자는 함경남도의 금호특별지구를 방문하고 함흥을 거쳐 평양을 둘러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가졌다. 대북 경수로 사업이 진행중인 금호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현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금호에서 평양으로 가는 전세기를 타기 위해 함흥의 선덕공항까지 대부분이 비포장인 122㎞를 버스로 4시간여 동안 달렸다. 주마간산이지만 창 밖의 참상은 북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순안공항을 통해 평양에 도착해서는 안내원의 통제 아래 주체사상탑과 모란봉공원 등 평양의 요소요소를 한나절 동안 구경했다. 하루 동안에 전혀 다른 두 개의 북한을 본 셈이다.

금호는 속초에서 쾌속정 한겨레호를 타고 들어갔다. 3시간 30여분 동안의 항해 끝에 함경남도 신포의 양화항에 도착, 입북절차를 밟은 뒤 지프를 타고 금호에 갔다. 금호에 있는 65만평의 생활부지와 원전이 건설중인 663만평의 건설부지는 북한땅이지만 한반도에너지 개발기구(KEDO)의 배타적 지배권이 보장되는 치외법권지대다. 북한사람도 이 곳에 들어오려면 KEDO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생활부지에는 1,488명(우즈베키스탄 근로자 631명 포함)의 원전 건설관련 인력이 살고 있고, 물만 빼놓고는 모든 자재가 울산에서 바지선으로 조달된다. 공사 관계자들은 생활부지와 5.7㎞ 떨어진 공사현장을 출퇴근한다. 생활부지는 모든 생활을 이 곳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숙소와 식당은 물론 병원과 교회 성당 법당 등 종교시설, 은행 및 슈퍼마켓과 노래방 등 편의시설, 골프연습장 등 체육시설이 골고루 갖춰진 하나의 소도시다.

금호 방문에는 증명서가 3개나 필요했다. 뉴욕의 KEDO 본부가 발행한 증명서(Certificate)와 통일부가 방북을 허가한 방문 증명서, 그리고 평양에서 베이징을 경유해 귀국해야 했기 때문에 중국비자가 부착된 여권이 있어야 했다. 5박6일의 일정이었지만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마치 몇 개월에 걸쳐 여러 대륙을 방문하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는 북한을 생각할 때마다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이 좀 더 잘살게 되고 개방에 나서야 우울증이 해소될 터인데 그 날은 빨리 올 것 같지가 않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