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최남단은 우리가 잘 아는 희망봉이다. 대륙에서 가느다란 반도가 100㎞쯤 남극을 향해 내려가다 높은 절벽을 이루며 뚝 끊어진다. 대서양의 차갑고 거친 바닷물에 시달리던 유럽의 뱃사람들이 이곳에 당도하면 인도양을 만나게 되어 희망봉이라 이름을 붙였다 한다. 두 팔을 벌리고 서면 왼쪽이 인도양이고 오른쪽이 대서양이다. 이곳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면 지구가 원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태양은 작열하지만 대서양쪽은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화물선을 뒤집을 것같은 파도로 해무(海霧)가 가득하고, 인도양쪽은 비교적 고요하다.■ 희망봉 위에 140년 전에 세워진 등대가 있다. 관광객이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끝이다. 들끓는 정도는 아니지만 관광객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아프리카인, 유럽인, 아랍인, 미국인, 아시아인이 골고루 섞여 있다. 중국인이 의외로 많다. 아프리카에서 제일 사납다는 바분 원숭이들이 손님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마구 자동차 위로 뛰어 오르거나 길 가운데 애기를 안고 드러누워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이곳에서만은 사람이 자연 앞에 작아져 버리는 것 같다.
■ 지난 21일 환경운동연합과 장사익 소리꾼 일행이 희망봉 등대에서 아리랑을 불렀다. 지속가능정상회의(WSSD) NGO포럼 한국의 날 공연행사에 앞서 희망봉에서 리허설 겸 한번 즉흥공연을 한 것이다. 원숭이들은 난데없는 소리꾼들의 행동에 의아한 눈초리를 계속 보냈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공짜 구경에 이내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월드컵 이후 노래로 끝낼 수 없는 국민이 되어버린 것일까. 누군가 박수를 치며 '대∼한민국' 이라고 외쳤다.
■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관광객들이 양팔을 앞으로 쫙 벌리면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특히 흑인들이 더 열정적인 몸짓을 보였다. 모잠비크에서 수학여행을 왔다는 흑인 중학생들은 한국인보다 더 율동적으로 박자를 맞추며 한참 외쳐댔다. 그들은 월드컵에서 한국이 몇 등 했는지 몰랐다. 그러나 월드컵을 치른 나라이고, 태권도를 배우며 매일 몸을 단련한다며 두 여학생이 즉석 대련을 해보였다. 한 남아공 흑인은 "남아공 선수단 응원을 잘해줘서 고맙다"며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김수종 논설위원 sj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