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준비하자' 일본 대중문화의 4차 개방을 준비하는 음반업계와 방송사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르면 9월 말, 늦어도 올해 안에 정부의 조치가 있을 것이란 소문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가요와 방송. 가요는 일본어 음반 발매와 일본 가수의 일본어 공연 및 방송 출연 등이 아직 묶여 있다. 방송 역시 보도 교양 등 일부 프로그램만 허용된 상태. 정부의 4차 개방이 '전면'은 아니더라도 이런 제한을 대폭 풀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 이에 따라 대중음악계는 라이선스와 저작권 관리 계약은 물론 양국공동작업까지 모색하고 있고, 방송계도 일본 방송사와 프로그램 계약을 맺어두는 등 개방에 대비한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가요
개방에 대한 준비는 이미 1차 개방 때부터 세 갈래로 시작되었다. 소니, EMI 등 일본 계열사를 거느린 직배사들이 가장 먼저 뛰어들었고, 이어 일본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일본과 손잡은 국내 기획사들도 생겨났다. 일본 자본이 투자된 업체로는 비잉 뮤직 코리아와 K&J 엔터테인먼트, 아뮤즈 코리아, 엑스 재팬의 멤버였던 요시키가 설립한 Y.E.A 등이 대표적이며 국내 기획사 중에는 t엔터테인먼트와 SM 엔터테인먼트가 선발 주자. 이들 중 일부는 일본측 음악 관계자들과 6월 한국과 일본의 국가번호를 딴 '8182회'라는 모임을 결성해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지금까지 업체가 가장 신경을 쓰고있는 부분은 라이선스 계약. 일본 음원을 사들여 개방이 되자마자 국내에서 발매하기 위해서다. 안전지대, 엑스 재팬, 아무로 나미에, 비즈, 튜브, 글레이, 서던 올스타스, 미스터 칠드런 등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가수들이 주 타깃이다. 일단 무조건 사두고 보자는 사람도 있다. 일본의 대형 기획사인 에이벡스와 포괄계약을 체결한 SM 김영민 팀장은 "개방하면 아무로 나미에, 하마사키 아유미, ELT, 미샤 등 인지도가 높은 가수의 음반을 일시에 풀 계획"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부문도 미리 계약을 맺어 두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기린음악출판사가 1994년 방송국 TBS 산하의 음악저작권회사 니치온과 계약을 맺었고 적지 않은 업체들이 이미 계약을 맺었거나, 일본 측에 선을 대고 개방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음반제작사와 별도로 저작권을 관리하는 음악출판사가 활성화되어 있고, 일본음악저작권협회(JASRAC)와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 간에 상호관리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음반이 개방되면 현재 노래방과 벨소리, 커버버전 등인 저작권 수익은 훨씬 커진다.
최근에는 라이선스 계약과 저작권 관리를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개방에 대비하고 있다. 업계에서 일본통으로 꼽히는 t엔터테인먼트 배성민 과장은 "단순히 일본 음악을 들여와 장사를 하기보다는 홍보 마케팅 등 앞선 일본의 시스템을 배워 가요에 접목하고, 상호교류 하려는 시각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양국에서 통할 수 있는 음악과 인지도, 네트워크만 확보되면 일방적 수입이 아닌 수익이 배가되는 윈-윈 게임이 된다는 것.
보아가 대표적인 성공사례. SM은 한국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한 보아를 막강한 유통력을 가진 일본 에이벡스에 맡겨 양국에서 대박을 냈다.
일본 최대 기획사 중 하나인 비잉 뮤직과 합작한 CNK는 한국 작곡가의 곡을 일본 가라오케에 수록하는 것을 비롯해 광고 및 OST에 음악을 삽입하는 '타이 업' 방식을 준비하고 있다. 개방 이후에는 한국 가수와 일본 가수의 곡 교환을 계획하고 있다. 이밖에 일본에 진출한 드렁큰 타이거와 체리필터의 여성 보컬 조유진측도 다양한 공동작업을 계획 중이다.
일본과의 교류에 중국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비잉 뮤직 코리아의 조남권 부장은 "일본은 한국시장을 중국으로 가는 전초기지로 보고 있다. 우리도 일본 음악 개방을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음악시장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1998년 삼성경제연구소는 '일본대중문화의 경제적효과 분석'에서 개방 수위에 따라 국내 음악시장은 3∼8% 확대되지만 한국 음반의 시장 점유율은 3∼6%로 하락하고 일본 음악이 국내시장의 5∼1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어떻게 준비하고, 전략을 짜느냐에 따라 이 정도의 경제적 손실은 우리 가요의 일본 시장공략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가요의 본격 등장에 따른 문화적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방송
지상파 방송사는 일본 제휴방송사와 협력관계를 돈독히 다지거나 인기프로그램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진짜 알짜배기인 드라마·쇼·오락 등이 남아있기 때문. KBS는 1968년 공영방송 NHK와, MBC는 70년 후지TV와 제휴를 맺었고, SBS는 91년 개국 당시부터 니혼TV(NTV)와 프로그램 제작에 관한 업무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케이블채널 YTN과 협력관계인 일본 TBS도 지상파방송사와 제휴를 모색하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한 프로그램의 수입이 아니라 양국이 동시에 컨텐츠를 확보할 수 있는 안정적 통로로 제휴사와 공동제작에도 적극적이다. 3차 개방 이후 일본의 방송사들도 적극적이다. NHK는 올초 KBS에 '한·일 가요제'를 한국에서 열 것을 제안했으나 일본어 가요가 허용되지 않아 무산되기도 했다.
MBC가 특히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자회사인 케이블채널 MBC드라마넷은 2월 후지TV의 인기드라마 '백한번째 프로포즈' '도쿄 러브스토리' '춤추는 대수사선'을 구입했다. MBC프로덕션은 TBS와 드라마 '프렌즈'를 공동제작 방영했고, MBC본사도 후지TV와 '소나기, 비 개인 오후'를 합작해 11월 방송할 예정이다. 11,18일 방송한 다큐멘터리 '일과 여성, 사랑'은 후지TV와의 공동제작. SBS는 NTV와 오락프로그램 '라스트스테이지'를, KBS는 '슈퍼티처스, 미래의 교실'을 NHK와 함께 만들어 방영했다.
국내 방송사들이 적극적인 데는 최근 일본 방송 개방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인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방송위원회가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000명의 응답자 가운데 55.1%가 일본방송 개방이 국내 방송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고, 올해 안으로 전면 개방해도 된다는 응답자도 38%나 됐다.
SBS 편성기획팀 주영호 박사는 "애니메이션이나 대중음악에 비하면 일본의 방송프로그램은 덜 매력적이다. 하지만 방송이라는 매체특성상 파급효과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일방적인 일본 프로그램 받아들이기는 안될 것이란 주장도 많다. MBC 국제협력부 신주영씨는 "TV아사히를 통해 '이브의 모든 것'이 일본 전역에 방송되는 등 일본 방송사들의 우리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일본 방송의 전면 개방은 우리 프로그램의 일본 진출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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