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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전쟁은 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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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전쟁은 病이다"

입력
2002.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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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학살, 재난, 폭력 등은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와 목격자 등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정신적 외상(外傷·trauma)을 남긴다. 이를테면 잔혹한 전투를 치른 병사뿐 아니라 재난 구조원, 소방관, 심지어 취재 기자들도 정서적 손상을 입는다고 한다. 이 상처는 대개 의식 저변에 잠재하지만 그 공포와 분노, 증오 등은 때로 외부를 향한 공격성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또 잔혹성에 둔감하거나 피학(被虐)적 성향을 갖기에 이르기도 한다. 이는 개인과 집단을 넘어 한 사회, 전체 국민에도 나타난다는 것이 정신의학의 연구 결과다.국제분쟁을 정서적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을 한가하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정치 경제적 이해에 집중하는 전략적 분석이 미처 설명하지 못하는 의문을 해소하는데 때로 도움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자살 폭탄테러와 보복학살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것이 한 예다. 옛 유고 연방 여러 민족이 민족주의적 가학(加虐)을 주고 받은 것도 비슷하다. 세상을 놀라게 한 9·11 테러의 원인을 이런 맥락에서 찾는 분석은 한층 의미 있다.

그 9·11 테러 1주년을 앞두고, 미국은 이라크 침공 전쟁의 결행 여부를 소란스레 논란하고 있다. 올 가을 결행 다짐은 일단 내년 봄으로 미뤘지만, 정작 전쟁 명분을 둘러싼 안팎의 회의와 반대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매일같이 내놓는 새로운 다짐과 명분도 분명한 계획이나 근거로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미국의 진정한 의도를 유추하려는 갖가지 전략적 분석도 그야말로 구름 잡는 식이 되기 십상이다.

미국이 거듭 제시하는 전쟁 명분은 애당초 설득력이 없다. 미국은 처음 이라크 침공을 대 테러 전쟁의 연장으로 선전했으나, 이라크가 테러조직 알 카에다 등과 연계된 증거는 없다. 이어 이란 북한과 더불어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대량살상무기 개발저지를 내세웠지만, 이라크가 당장 핵과 화학무기 등을 개발·비축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주변국을 공격할 형편도 아니고, 무엇보다 미국과 서구를 위협할 주제도 되지 못한다. 유럽 및 중동 우방과 미국 안에서도 전쟁 반대론이 거센 이유다.

이런 사정이 명백한데도 미국이 이라크 침공과 정권 교체까지 꾀한다면 그 목적은 친미 세속정권을 옹립, 이 지역 석유자원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것이다. 국제법질서와 도덕성 등의 명분보다 국익을 앞세운 일방주의를 좇는 부시행정부 주도세력에게는 이런 제국주의적 체스게임은 분명 매력적이다. 키신저를 비롯한 공화당 원로들까지 전쟁 반대론에 기운 상황에서 체니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거듭 '전쟁 불사'를 외치는 동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은 공연한 위협에 그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사우디를 비롯한 주변 이슬람국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에 친미 세속정권이 들어서면 자신의 완고한 회교 통치의 정통성이 위협받을 것을 우려한다. 이라크 봉쇄가 풀려 막대한 석유가 시장에 유입되는 것도 이익에 반한다. 사우디와 이란 터키 요르단 시리아 등이 이라크와 교류를 확대, 이라크가 고립을 벗어난것도 미국의 일방적 전쟁을 어렵게 한다.

아프간 침공 때와 달리 국제 여론의 대세가 반전(反戰)쪽으로 기운 상황에서도 체니 부통령은 후세인의 태도에 관계없이 정권 교체를 이룰 것이라고 다시 호언했다. '해외참전전우회' 모임에서였다. 단순히 참전용사들의 상징성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서적 상처를 헤집어 대국민 선전에 동원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분석은 미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라크 침공을 지지한 여론조사에 주목한다. 9·11을 겪은 미국인들은 이라크 위협의 실재 여부를 분별할 수 없는 정서적 상처를 안고 있다. 부시 행정부 강경파는 이 상처가 아물 때까지 전쟁을 알리는 북소리로 보복심리를 만족시킬 것이란 전망이다. '전쟁은 병'이고, 그 병을 치유하는 비방(秘方) 은 세상을 바로 보는 것 뿐이다. 전쟁 북소리를 열심히 전파하는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강병태 편집국 부국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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