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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이야기](16)완도 어두리 해저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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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이야기](16)완도 어두리 해저유물

입력
2002.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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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앞바다의 해저유물 발굴은 신안에 이어 국내 해저 발굴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완도 어두리의 해저 유물은 발견된 사연부터 색다르다. 전남 순천지청에서 산란기에 포획금지된 키조개를 남획한 일당을 수사하던 중 고려청자 도굴 첩보를 입수한 것이다. 순천지청은 바로 도굴꾼을 잠수시켜 인양한 유물이 고려청자임을 확인한 뒤 관계 당국에 알려 본격 발굴조사로 이어지게 됐다. 때는 1983년 12월 13일이었다.76년부터 계속된 신안 앞바다 발굴이 막 끝나 자료 정리에 쉴 틈이 없던 때였지만 문화재관리국은 도굴 우려 때문에 조사를 강행키로 했다. 김정기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단장으로 한 조사단에 필자는 실무 조사요원으로 참여했다. 첫 조사에 나선 12월 20일은 풍랑이 강하게 일어 두터운 방한복을 입고도 온 몸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수심 12∼15m, 시계는 제로. 해저면은 뻘 속에 조개껍질이 범벅이 돼있었다. 첫 잠수팀이 바다로 뛰어든 지 20분쯤 지나자 잠수사가 가지고 들어간 철제광주리를 연결한 로프가 흔들렸다. 뭔가 나왔다는 신호였다. 로프를 끌어올리자 광주리 가득 고려청자 대접 등이 담겨져 있었다. 누군가 "야! 이것이 해저 발굴의 묘미야"라고 외쳤다. 29일까지 진행된 1차 조사에서 11세기 후반께 만들어진 고려청자 등 1,484점의 유물을 건져올렸다.

이듬해 3월 시작한 2차 조사에서는 청자가 하루 1,000∼2,000점씩 쏟아져 나왔다. 특히 지상 발굴에서는 완형으로 나온 적이 없는 청자철회 모란무늬 장고틀이 인양돼 조사원들은 그야말로 신바람이 났다. 하루는 잠수팀을 이끌던 한수부 부장(이름처럼 타고난 잠수사였다)이 내게 귀엣말을 했다. "형님! 조심스러워 말씀을 못드렸는데 철창으로 뻘 바닥을 뒤지다 손끝에 물체의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순간 '아, 배가 있구나' 하고 직감했다.

선체 확인에 들어간 다음날은 바람도 없고 기온도 섭씨 12도로 작업하기에 딱 좋았다. 드디어 선체를 확인하기는 했지만, 평평한 배 바닥이 뻘에 착 달라붙어 있어 인양하기가 쉽지 않았다. 며칠간 숙의 끝에 에어백을 선체 저판에 달아 공기를 넣어 상승시키기로 하고 작업을 준비하는데, 그렇게 고집스레 뻘 바닥에 붙어있던 선체 하부가 서서히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선체 일부를 조사선 뒤에 매달고 선창으로 운송하면서 마치 큰 고래를 잡아 의기양양하게 뭍으로 향하는 느낌이었다.

인양된 선체 조각 81점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선박은 길이 9m, 폭 3.5m에 10톤급 목선으로 추정됐다. 이 배는 우리나라 범선으로는 가장 오래된 배로, 옛 범선 제작기술 및 해양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선체는 보존처리를 거쳐 복원돼 목포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돼 있다.

무슨 인연인지 필자는 그 후로도 해저 발굴을 주로 했다. 요즘도 바다를 보면 어디쯤엔가 1,000년 세월을 말없이 묻혀있던 비색(翡色) 청자들이 발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 않나 싶어 가슴이 설렌다. 최근 12세기 고려청자가 무더기로 인양된 군산 비안도 앞바다에서도 수장된 사연을 밝혀줄 선박이 발견되기를 기대해본다.

이명희 문화재청 매장문화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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