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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방송 미국식이냐 유럽식이냐/"미국式 백지화" 요구 논란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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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방송 미국식이냐 유럽식이냐/"미국式 백지화" 요구 논란가열

입력
2002.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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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방송 전송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정보통신부는 1997년 채택한 미국식(ATSC)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고, 방송 현업자와 시민단체는 유럽식(DVB) 방식으로 빨리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방송·시민 단체는 대선 후보들에게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다.

28일 낮12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매체비평우리스스로,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등 30여개 시민·방송단체 관계자 300여 명이 모여 한 목소리를 냈다. "미국식 디지털방송 전송방식을 즉각 백지화하고 디지털방송 정책을 연내에 재결정하라."

디지털전송방식은 한마디로 지상파 방송사가 제작한 디지털방송 프로그램을 각 가정의 TV 수신기로 송출할 때 사용되는 기술방식. 주파수 대역 수와 효율성, 평균 전력소모량, 잡음 억제력 등에 따라 미국식(VSB)과 유럽방식(COFDM)으로 나뉜다. 정통부와 시민·방송 단체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것도 이 전송방식의 장단점에 대한 시각차 때문이다.

우선 시민·방송 단체는 유럽 방식이 도심지 건물 안팎과 휴대폰의 수신율이 미국 방식에 비해 월등히 낫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9월과 11월 MBC 자체실험 결과 도심지 건물 밖에서 안테나 높이 9m 고정수신의 경우 유럽식은 84.1∼86.4%, 미국식은 72.7%의 수신율을 보였다. 이동수신의 경우에도 유럽식이 77.0%, 미국식이 15.5%를 기록했다.

김광호 서울산업대 교수는 "최근 미국에서 진행됐던 미국식 디지털 방송방식 개선을 위한 실험 결과에서도 이동 수신율이 거의 0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며 "이는 이동수신을 포함한 미국식 전송방식의 여러 단점이 조만간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던 정통부의 주장을 뒤집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통부는 미국식이 이동수신 측면에서 유럽방식에 비해 약점은 있지만 저렴한 투자와 경비로 고화질TV(HDTV)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식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정통부 고위관계자는 최근 "1997년 객관적 검토작업과 장기간 실험을 통해 미국식 표준을 채택했는데 이제 와서 유럽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정통부 관계자는 "어느 방식이 더 장점이 많은가가 아니라 어느 방식이 우리 환경에 맞느냐가 디지털전송방식 채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유럽은 방송주파수 대역이 7∼8㎒인데 비해 미국과 일본 한국은 6㎒로 방송환경 자체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시민·방송 단체가 유럽식과 미국식의 채택국가 수를 자신들 주장의 근거로 삼은 데 대해 "유럽식은 유럽 국가들의 공통방식으로 당연히 채택 국가의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며 "수년간 미국방식을 연구,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이 유럽식으로 변경하면 사전시험방송과 채널 재배치 등으로 디지털방송 실시가 다시 최소 1, 2년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 했다.

이같은 정통부 입장에 대해 특히 시민단체는 정책의 투명성 확보와 소비자운동 차원에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미국식 전송방식의 핵심기술인 VSB를 개발한 미국 제니스사가 L'전자의 자회사라는 점과 관련, 정부는 뚜렷한 선정배경을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용 서울YMCA 시민사업팀장은 "정부는 지금까지 디지털방송정책의 투명성과 공개를 요구한 소비자 운동을 아무런 근거 없이 외면해왔다" 며 "디지털방송정책은 2003∼2007년 펼칠 새 정부의 핵심 방송정책인 만큼 각 정당과 대선 후보는 이에 대한 책임 있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디지털 방송방식 비교

정보통신부는 1997년 미국방식(ATSC)을 디지털전송방식으로 채택하고, 2001년11월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본방송 실시를 추진했다. 그러나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방송현업인과 시민단체들은 유럽방식(DVB)으로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디지털방송방식 변경운동이 활발해지면서 한국적 상황에 맞는 디지털방송 기술표준에 대한 논의 또한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방식과 유럽방식의 차이가 뭐기에 이런 논란이 벌어지고 있을까.

미국방식 ATSC(Advanced Television Systems Committee)는 AT&T, MIT, 필립스, 톰슨&제니스 등 미국의 대표적 가전메이커와 대학이 주축을 이뤄 96년 제정한 기술표준. 광활한 대지가 많은 북미의 지형적 특성과 지상파 위주의 서비스를 고려해 개발됐으며, 미국 캐나다 한국이 채택했다.

유럽은 91년부터 가전업체, 망사업자, 컨텐츠사업자 등 다양한 분야사업자들이 협력해 산악지형이 많고 위성서비스에 초점을 두고 디지털방송 표준을 개발했다. 93년 구성한 위원회 DVB(Digital Video Broadcasting)의 이름을 딴 기술표준은 유럽 전체 국가와 대만 호주 싱가포르 인도 홍콩 남아공 러시아 등 전세계 40여개 국에서 채택됐다.

미국식은 유럽식에 비해 송신기 출력이 높은 점이 장점. 유럽식과 똑같은 전력으로 전파가 도달할 수 있는 거리가 약 2배에 이른다. 하지만 이동수신이 거의 되지 않고 있으며, 이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유럽식은 미국식보다 수신율이 평균 15% 정도 높다. 건물이나 산악 등 지형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전파만을 수신하는데 더 유리하다. 지난해 MBC 실험에서는 고화질(HD)급으로 방송할 때도 수신율이 11%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에서는 보다 많은 채널을 서비스하기 위해 SD급으로 방송하고 있으나, HD급 방송도 가능하다. 고화질은 초당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전송하는가와 관련이 있는데, 미국식 전송속도는 초당 19.39Mbps인 반면 유럽식은 3.5∼23.5Mbps이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박병완 언론노조 DTV특별위원회 위원장

박병완(43·사진) 전국언론노동조합 DTV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디지털TV 방송방식 변경운동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방송기술인연합회원장을 맡은 2000년 7월 그는 정보통신부에 디지털방송방식간 비교현장실험을 요구하면서 방송방식 변경 운동은 본격화했다. 박병완 위원장은 "미국 방식을 선택한 것은 정부의 정책적 오류였다"고 말한다.

―미국 방식(ATSC)에서 유럽 방식(DVB)으로 변경해야하는 이유는?

"미국식보다 유럽식이 국내 여건에 적합하다. 지난해 MBC가 실시한 비교실험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에서 실시한 비교실험 결과를 종합해보면, 유럽식이 높은 빌딩이나 산악과 같은 지형적 장애를 극복하는 데 유리하고, 수신율이 높아 난시청 해소에 유리하다. 이동 수신도 더 잘 된다. 이론상 유럽식이 미국식보다 전파도달거리가 더 짧지만, 좁은 땅덩어리에서 방송권역이 여러 개로 나뉜 우리 상황에서는 전파도달거리가 길 필요가 없다. 미국식은 고화질(HD)방송이고, 유럽식은 표준화질(SD)방송으로 알려져 있는데 유럽식도 최고 20%정도 더 고화질로 방송할 수 있다."

―지상파방송사들이 주당 10시간씩 HD디지털방송을 실시하고 있다. 너무 늦은 것 아닌가.

"디지털방송 전환을 위해 지상파방송사들은 카메라나 송신 장비등을 교체하고 있다. 현재까지 2,000억∼2,500억원 정도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방송방식이 바뀌더라도 송신과 관련된 부분만 장비를 교체하면 되는데, 추가 비용은 약 10억원일 뿐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일반가정의 TV수상기도 튜너만 교체하면 된다. 변경시기가 이를수록 추가비용은 적게 들어갈 것이다."

―일부 방송사의 기술 실무진이 뚜렷하게 입장 표명을 하지 않다가 최근에야 유럽식으로 변경을 요구하기 시작했는데.

"KBS MBC SBS EBS 등 지상파방송사의 기술실무진들은 처음부터 유럽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KBS SBS의 방송현업인들은 정부나 회사의 방침과 어긋나기 때문에 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KBS SBS의 방송현업인들도 유럽식으로 변경이 필요하다고 공식 표명했고, 디지털TV 방송방식 변경을 위한 소비자운동도 일어났다. 1997년 정통부가 미국식으로 결정할 때만 해도 디지털 방송기술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충분한 정보를 축적했고 정부의 논리에도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다."

―미국방식을 개선하는 것으로는 부족한가.

"미 방송사들이 ATSC위원회에 이동수신이 안 되는 단점의 개선을 요구한 지 2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과가 없다. 결함이 있어 리콜된 자동차를 2년이 넘도록 받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 아닌가."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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