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라차." "쿵쿵."27일 오후 3시 태릉선수촌 역도훈련장. 부산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을 대표할 역사(力士)들이 침묵속에 순간의 힘을 집중하며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눈빛이 유난히 다부진 소녀가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바벨을 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바로 4월 전국춘계여자역도대회 58㎏급에서 합계 200㎏의 한국기록을 세워 유소년 선수로는 사상 첫 2체급(53,58㎏급) 한국기록 보유자가 된 임정화(15·대구서부공고1·사진) 다.
'여자 전병관'으로 불리는 임정화는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아시안게임서 53㎏급 금메달에 도전한다. 지난해 11월 자신이 세운 한국기록(인상 88㎏, 용상 108.5㎏) 을 경신하는 것은 물론 만리장성을 넘어 세계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다.
전병관 코치는 "인상100㎏, 용상125㎏이 세계기록이지만 작년 세계선수권 최고기록인 95㎏,115㎏선을 넘길 경우 금메달을 노려볼 만 하다"고 전망한다. 중량을 늘려가며 하루에 30회씩 무거운 쇳덩이와 싸우는 임정화는 부위별 근력 강화와 자세잡기를 지속하고 월, 금요일에는 기록 경신을 시도한다. 현재 95㎏,113㎏(비공식)을 들고 있어 기록만 보면 동메달에 해당하지만 경기 당일의 컨디션에 따라 금메달도 바라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매일 오전 10분씩 스스로 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시합 상황을 설정해 어떤 스타트 동작과 기술로 경기를 풀어갈 것인지 머리속에 그려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한다.
전코치는 "중국의 최종엔트리를 지켜 본 뒤 정화를 58㎏급으로 교체 투입할 수도 있다"며 "내달 29일 감독자회의 결정에 따라 북한의 리성희와의 맞대결 가능성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신장 150㎝의 작고 단단한 체구에서 나오는 선천적인 근력이 같은 또래의 남자선수에 뒤지지 않는 임정화는 원래 육상 선수였다. 대구 화원초등학교 4학년때 전국소년체전 여자 80m에서 세운 임정화의 기록(11초3)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중량과의 싸움이 끝나면 임정화는 '명랑소녀'로 돌아간다. 만화책 '명탐정 코난'을 탐독하고 인터넷으로 친구들과 '테트리스 게임'도 즐긴다. 다만 체중조절 때문에 얼마 전 간식이 금지돼 아쉽다. 밤 9시30분께 어김없이 즐기던 통닭 한 마리와 피자의 달콤한 추억이 밤마다 괴롭힌다. 하지만 임정화는 "부산에서 세계기록 작성이 목표니까 성공하면 금메달은 당연히 따라오겠죠"라고 당차게 말했다.
/글=박석원기자 spark@hk.co.kr
사진=류효진기자
■체조대표 양태영·태석
지난달 13일 체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나란히 태극마크를 단 양태영(22·한체대4) 태석(20·한체대2) 형제가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동반 금메달 획득을 노리고 있다.
10일 부산 전지훈련을 마치고 현재는 태릉선수촌에서 비지땀을 쏟고 있는 양태영은 한국체조의 차세대 간판으로 주목받는 재목. 마루운동과 뜀틀, 평행봉이 주종목이다. 평행봉에서 2000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중국의 리샤오펑을 꺾고 반드시 정상에 오른다는 각오다. 특히 봉 밑으로 쳐져서 뒤로 두바퀴 돈 뒤 팔로 걸치는 고난도의 벨레동작이 주무기이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힘있는 경기를 펼치는 양태영의 기량으로 볼 때 충분히 리샤오펑과 붙어볼만 하다는 게 코칭스태프의 평가이다. 지금은 착지동작의 완숙도를 보완하기 위해 집중 연습을 하고 있다.
철봉에서 금메달에 도전하는 동생 태석은 앞으로 한바퀴 돌면서 옆으로 몸을 비트는 '예가 360도 회전'이 주특기. 이 종목 강자인 일본 선수들을 꺾기 위해 10점짜리 고난도 기술을 내세워 승부수를 띄울 생각이다.
창천초등학교 4학년이던 1990년 담임선생의 권유로 태영이 체조에 입문하자 동생 태석은 화려한 공중돌기를 선보인 형이 신기해보여 1년뒤 덩달아 체조복을 입게 됐다. 호기심 많은 태석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운동을 시작하면서 2년 터울의 형제선수가 탄생하게 된 것.
둘은 94, 98 아시안게임의 이주형(현 대표팀코치) 장형(대구은행) 형제에 이어 두번째로 아시안게임에 동반출전하는 형제선수이다.
/박석원기자
■배드민턴 중국인코치 2人
27일 오후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요람인 태릉선수촌 오륜관. 금메달의 꿈을 안고 구슬땀을 흘리는 배드민턴 선수들 사이에 낯선 중국인 코치가 눈에 들어왔다.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취지로 여자단식의 전력강화를 위해 영입한 중국대표 출신의 리마오(44) 코치였다.
여자단식은 96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방수현 이후 뚜렷한 선수가 없어 국제대회에서 명함도 내밀기 힘든 취약 종목이다. 2000시드니올림픽직전까지 한국대표팀을 가르쳤던 리마오코치가 태릉선수촌에 돌아온 것은 지난 1월. 매월 3,000달러의 적지 않은 월급을 받는 리마오코치는 "김경란 전재연 등은 조금만 보완하면 메달권에 들 수 있다"며 "선수들과 언어소통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고 털어놓았다. 6월 합류한 뤼짼(21)은 코치라기 보다는 연습파트너에 가깝다. 월 1,000달러를 받는 뤼짼은 저장성 대표출신으로 파워 넘치는 스매싱을 구사, 금세 여자선수들의 유니폼을 땀에 젖게 만들기 일쑤다.
중국 남자대표팀의 선준, 동지옹 등을 길러낸 리마오코치는 한국 배드민턴과 인연을 맺으면서 사실상 중국무대로 돌아 갈 길이 막혔다. 중국대표팀 감독이 리마오코치의 한국행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리마오코치는 선수들을 편안하게 해주면서 재미를 곁들이는 다양한 훈련으로 태극전사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리마오 코치는 중국선수와 한국선수가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만나면 누굴 응원할 것이냐는 질문에 "당연히 같이 땀 흘린 한국선수죠"라며 활짝 웃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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