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경노동위 오세훈(吳世勳) 의원과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현장 조사단이 '다이옥신 재해구역 선포하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린 천막으로 다가가자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민 30여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맺힌 한을 토해냈다.4대째 이 마을에서 살아온 임규문(林圭文·64)씨는 "옥토가 죽음의 땅으로 변하는 등 민심이 흉흉해졌다"고 대뜸 말문을 열었다. 임씨는 "다른 지역보다 암으로 죽는 주민들이 많았지만 그저 팔자라고 여겼다"며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바로 저것 때문"이라고 굴뚝을 가리켰다.
50가구 남짓한 이 마을에서 90년대 이후 암으로 사망한 주민은 7명. "현재 4명이 암 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임씨는 "제 명대로 살기 힘들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안중면 지역에 나타난 불길한 징후는 암 뿐만이 아니다. 독성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는 아카시아 나무조차 윗부분 가지가 죽어갔으며 완두콩은 빈 콩깍지가 태반이었다. 70,80년대만 해도 까치, 제비 등 새들이 몰려들었던 마을 안팎과 논에는 이젠 참새마저 사라졌다.
주민들은 특히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장모(37·여)씨는 "한번 감기에 걸리면 낫지를 않고 수개월씩 병치레를 한다"고 말했고 김모(56·여)씨는 "온 몸에 물집이 잡히는 희한한 피부병을 앓는 아이들이 많다"고 걱정했다.
소각장 주변 마을은 생계수단인 농업에도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 다이옥신에 노출된 쌀이나 야채를 아무도 먹지 않는다는 것. 이모(53)씨는 "마을에서 재배한 야채는 시장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각장 앞 농성을 주도하고 있는 김효중(金孝中·50) 마을대책위원장은 "대구, 부산 등 전국에서 폐기물을 싣고 온 차량들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이 곳을 드나든다"며 "왜 우리 마을이 이런 희생을 감수해야 하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김 위원장은 특히 "소각장에는 해마다 수 차례씩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며 "회사는 그때를 틈타 유해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주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다이옥신 혈중농도 연구결과 발표이후 평택시와 환경부가 보인 황당한 주장이다.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나왔는데도 소각장 가동 중지는커녕 오히려 주민들의 다이옥신 축적은 쌀이나 야채 등 식품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고 소각장을 두둔하더군요"
더욱이 환경부와 평택시는 다이옥신 정밀조사단에 환경단체 등을 포함시켜 달라는 주민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정부 차원의 조사를 고집하고 있다. 이날 현장조사단과 함께 마을을 찾은 평택시 관계자는 "민간연구소 조사 결과 다이옥신 수치가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정밀한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소각장 가동을 중단시킬 합법적인 명분이 없다"고 해명했다.
"솔직히 마을을 떠나고 싶어요. 그러나 평생 흙만 파먹던 우리가 어디를 가겠습니까." 떠나는 조사단에게 농성장 촌로들이 던진 푸념이었다.
/평택=강 훈기자 hoo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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