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넘어가는 길. 여행의 테마를 잡기에 조금 어정쩡한 시기이다. 더위는 꺾였는데 아직 단풍은 멀었다. 눈과 가슴보다는 머리를 채우는 여행이 적당할 듯하다. 한국관광공사에서 9월에 갈만한 역사·문화 체험여행지 4곳을 추천했다. 역사의 줄기를 거슬러 오르는 시간여행이다.고령 대가야 유적지(경북 고령군)
경북 고령은 아직 관광지로서는 덜 알려진 지역. 그러나 한반도 남쪽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가야의 잊혀진 역사가 숨쉬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것으로 확인된 순장묘 '지산동 고분군', 선사시대의 암각화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지산동 고분군은 당시 왕족과 귀족의 막강했던 권력을 실감할 수 있는 곳. 죽은 후의 내세를 믿었던 당시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소장품은 물론 부리던 하인 등도 함께 무덤 속에 넣었다. 출토된 유물은 갑옷과 투구 등 전쟁용품이 주류를 이룬다. 언제나 전쟁 속에서 살았던 그 때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1971년에 발견된 양전동 암각화는 가로 6m, 높이 3m의 바위에 새겨진 그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동심원과 십자무늬, 탈 모양이 새겨져 있다. 세 겹의 동심원은 해와 달, 십자무늬는 부족사회의 생활권, 탈은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최신식 돔의 형식을 빌어 만들어진 대가야 왕릉 전시관을 찾아볼만하다. 지산동 44호 고분을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순장석곽, 철기, 도자기 등 많은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고령향토문화학교는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과, 가훈, 명언 등을 직접 판각하는 체험행사 등 많은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고령군청 문화체육과 (054)950-6060
소수서원과 부석사(경북 영주시)
유학과 불교 문화의 만남을 경험할 수 있는 여행이다. 소수서원은 우리 유학의 정신을 대표하는 곳이다. 1543년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원나라에서 최초로 주자학을 들여온 고려의 학자 회헌 안향(1243∼1306)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신라의 대찰 숙수사의 터였다. 당시 이름은 백운동서원. 이후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교육기관으로서 나라의 합법적인 인정을 명종 임금에게 청했고 1550년 명종은 친히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편액을 써서 하사했다. '소수'란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후 소수서원은 학문의 중흥이라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나갔다. 조선의 인물 절반은 영남 출신이고, 영남 인물의 절반은 퇴계의 문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서원은 크지 않다. 그러나 건물 배치의 자유스러움과 자연스러움에서 당시 학자들의 기품을 느끼게 된다. 입구에는 숙수사 당간지주(보물 제59호)가 우뚝 서 있다. 유생의 터에 보존돼 있는 불교의 상징에서 당시 학자들의 너른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소수서원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에 있는 부석사는 '보물 덩어리'이다.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을 비롯해 5점의 국보와 당간지주 등 4점의 보물이 있다. 역시 무량수전이 볼만하다.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건물이다. 신라의 의상대사가 문무왕 16년(676년)에 부석사를 세웠고 무량수전은 고려 현종 7년(1016년)에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건할 때 지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건물 중 하나이자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무량수전 뒤에 커다란 바위가 몇 개의 돌에 얹혀 마치 떠있는 바위처럼 보인다. 단정한 서채로 '浮石'이라는 글씨를 새겨 놓았다. 영주시청 문화관광과 (054)639-6062
동학혁명유적지(전북 정읍시)
정읍은 1894년 반봉건 민주화의 기치 아래 들불처럼 번졌던 갑오동학농민혁명의 신호탄인 고부 농민봉기가 일어났던 곳이다. 비록 미완으로 마감되었지만 역사발전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의미가 큰 혁명이었다. 정읍시에서는 그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당시의 유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전봉준 장군의 고택은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에 자리잡고 있다. 장군이 마을 훈장을 하며 기거했던 집으로 혁명 이후 불태워졌던 것을 다시 만들었다. 본채와 아래채 등 전형적인 아담한 시골집이다. 동학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만석보는 지금은 흔적도 없고 비석만 서 있다. 멀쩡한 보(洑)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 보를 쌓아 세금을 거둔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의 상징이어서 농민들이 부수어 버렸다.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은 혁명거사가 논의된 곳. 송두호의 집에서 20명이 혁명 계획을 마련했다. 마을 입구에 동학혁명 모의탑이 세워져 있다. 송두호의 집에 들르면 현재 거주하는 임두영 할아버지로부터 동학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 밖에 당시 요새였던 백산, 농민군이 관군을 최초로 격파한 황토현 등을 들러볼만하다. 동학혁명모의탑-황토현-전봉준고택-백산-만석보 비석 등의 순으로 구경하는 것이 편하다. 택시를 이용하면 2∼3만 원 선에 모두 돌아볼 수 있다. (063)530-7224
외암리 민속마을과 맹씨행단(충남 아산시)
아산은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 온양온천, 도고온천, 아산온천 등 물 좋은 세 곳의 온천이 있다. 또한 충무공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현충사와 그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아산에는 볼 것과 느낄 것이 많다.
설화산 기슭의 외암리 민속마을이 그 첫째이다. 예안 이씨 집거촌으로 기와집과 초가집 등 옛 건물이 모두 남아있고, 주민들도 여전히 그 안에서 생활한다. 돌이 많은 지역이어서 모든 집이 돌담을 두르고 있다. 조롱박, 호박 등 덩굴 식물이 돌담을 덮고 있다. 주민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단체 문의 (041)-543-8718
맹씨행단(杏亶)은 조선 청백리의 대표적 인물인 맹사성의 옛집을 일컫는 말. 우리나라 민가 중 가장 오래된 고택으로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살던 집으로 최장군이 손녀 사위인 맹사성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마당에 있는 600년 된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장관이다. 해마다 5가마의 은행을 선물한다고 한다. 아산시청 문화관광과 (041)540-2468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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