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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서쪽으로 지는가/서해 일몽명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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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서쪽으로 지는가/서해 일몽명소4

입력
2002.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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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비가 많은 여름이었다. 간혹 얼굴을 내민 태양은 비로 먼지를 걸러낸 맑은 대기를 뚫고 더욱 강렬했다. 계절의 법칙은 속일 수 없는 법. 모든 것이 식어간다. 사람들이 들끓었던 바다는 이제 긴 고독 속에 버려진다. 뜨거움을 잃어가는 여름의 마지막 태양을 보러 가자. 철 지난 바닷가의 고즈넉함과 잔잔한 파도 소리가 함께 한다. 들뜬 나들이가 아니라, 열정을 식히고 차가운 계절을 준비하는 잔잔한 여정이 될 터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체온이 변하는 해를 볼 수 있는 서해안 일몰 명소를 찾아간다.꽃지해변 거닐며 蜜語를

● 안면도(충남 태안군 안면읍)

올해 가장 많은 사람이 찾았던 섬을 꼽으라면? 단연 안면도이다. 봄에 열렸던 국제꽃박람회 덕분이다. 행사가 한창 물이 올랐을 때에는 전국의 관광버스가 모두 집합한 것 같았다. '사람의 파도'라는 말이 실감났다. 기세는 휴가철로 이어져 한여름까지 안면도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군중이 빠져 나간 광장. 그래서 여름을 보낸 안면도는 더욱 고즈넉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일몰의 명소는 꽃박람회가 열렸던 꽃지 해변. 해변 앞에 버티고 있는 할아비, 할미바위가 멋진 일몰의 세트가 되어준다. 긴 백사장을 거닐며 밀어를 나누는 연인의 모습이 부럽다.

안면도에는 꽃지 해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샛별, 바람아래, 장곡 등 해수욕장의 이름이 붙은 해변만 11곳. 모두 꽃지보다 덜 알려져 있어 사람의 발길이 뜸하다. 한적함을 원한다면 굳이 꽃지 해변을 찾을 필요가 없다.

올해 새로 개통된 해변도로와 77번 국도를 따라 해변을 두루 돌아보는 시간은 약 4시간.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정해놓고 해가 질 무렵 찾아가면 된다.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에서 빠져 천수만 방조제를 건너 좌회전하면 안면도이다.

● 원산도(충남 보령시 오천면)

안면도의 남쪽 끄트머리에 부속섬처럼 달려있는 섬이다. 충남에서 안면도 다음으로 크다. 안면도가 원래 섬이 아니라 반도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실질적으로 충남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대천항에서 약 20분. 뱃길을 이용해야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여정이다.

철 지난 바다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원산도 해수욕장을 비롯한 섬을 빙 두른 해변. 원산도 해수욕장은 고운 모래과 완만한 경사, 깨끗한 물과 적당한 수온으로 한번 찾은 이들이 두고두고 되찾는 곳이다. 길이 4㎞ 정도의 백사장이 가운데 밤섬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다. 물이 빠져 드러난 모래밭은 시멘트처럼 단단하다. 입자가 곱기 때문이다. 지프가 달려도 바퀴가 빠지지 않는다.

해수욕장 주위로 고만고만한 백사장이 늘어서 있다. 섬 전체를 하얀 띠처럼 두르고 있는 모래밭의 길이가 70리라고 한다. 바캉스 시즌이 끝나면 이 해변은 불쌍할 정도로 한적해진다. 특히 작은 해변은 거의 독차지할 수 있다.

해는 원산도 서남쪽에 있는 삽시도로 넘어간다. 섬과 바다와 갯벌이 모두 붉은 색으로 물든다. 대천항에서 원산도 저두항까지 하루 3회(오전 7시 50분, 낮 12시 30분, 오후 5시) 배가 운행한다. 대천 여객선 사무실(041)934-8772

松林너머로 떨어지는 해

● 마량포구(충남 서천군 서면)

아담한 어촌 마을이었다. 새 천 년을 맞았던 1999년과 2000년 사이에 갑자기 세상에 알려졌다. 서해안에서는 드물게 해돋이와 해넘이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천군의 곶부리가 비인만을 감싸고 남쪽으로 휘돌아 나 있어 동쪽 바다를 볼 수 있다. 비인만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떠오른다.

물론 해넘이도 일품이다. 천연기념물 169호인 동백나무 숲이 해안의 언덕에 조성돼있다. 옆에 동백정이라는 정자가 놓여있다. 정자에서 보면 앞바다의 작은 섬 뒤로 해가 넘어간다. 섬에는 소나무가 촘촘하다. 소나무를 까맣게 태우면서 넘어가는 해의 모습이 아름답다.

마량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 곳의 먹거리 축제. 가을이면 전어축제가, 봄이면 쭈꾸미축제가 열린다. 2,000년 10월에 처음 열린 전어축제는 마을에서 800만 원, 군에서 200만 원을 투자해 마련했던 작은 축제. 그런데 대박이 터졌다. 2년 연속 축제기간이면 마량으로 들어가는 지방도로가 완전히 주차장이 될 정도였고 내친 김에 올 봄부터 쭈꾸미 축제도 마련했다.

유명세를 업고 올해 3월 서천해양박물관(041-952-0020)이 이 곳에 문을 열었다. 희귀어종을 포함해 약 15만 점의 바다생물을 전시한다.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IC에서 빠져, 춘장대 이정표를 따라 지방도로를 타면 닿는다.

검은 해변·노을 묘한 조화

● 변산반도(전북 부안군 변산면)

설명이 필요없는 인기 관광지이다. 바다 절경과 빼어난 산세가 사시사철 사람들을 부른다. 가장 붐비는 곳은 채석강이 있는 격포해변. 책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의 거대한 해안 절벽 채석강을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아직 물이 흐르는 강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수억 년에 걸쳐 퇴적된 검은 수성암이다.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 기슭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격포 앞바다에 커다랗게 펼쳐진 위도 너머로 해가 진다. 검은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붉은 해. 묘한 감상에 젖는다.

분주함을 피하려면 인근 바닷가를 찾는다. 일단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지 않아 덜 부담스럽다. 격포 다음으로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은 변산해수욕장. 변산반도 해안을 빙 도는 30번 국도변에 있다. 바닷가 모래 위에서 일몰을 맞아도 좋고, 해수욕장 옆 언덕에 있는 정자 위에서 보아도 좋다.

최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곳이 궁항. 격포 남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포구 마을이다. 호젓함과 여유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썰물이 되면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포구 앞의 개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길 옆 자갈밭과 갯벌에는 굴, 바지락이 지천이다.

바다에서 보는 일몰이 조금 싱겁다면 왕복 2시간 다리품을 팔아 산 위에서 일몰을 맞을 수도 있다. 내변산 남여치에서 월명암으로 넘어가는 쌍선봉 옆으로 낙조대가 있다. 지금 낙조대 자체는 출입 금지구역이지만 근처 고개에서 해넘이를 볼 수 있다. 바다와 섬 사이로 넘어가는 해를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것. 한 마디로 장관이다. 변산반도 관리사무소 (063)582-7808

/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길에서 띄우는 편지

여행업계는 지금부터 약 한 달간을 ‘비수기’라고 합니다. 이미 휴가철이 끝났고 큰 명절 추석(9월 21일)이 끼었기 때문에 모두들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는 특별한 행선지를 선택하기도 애매합니다. 그래서 여행지가 한산해집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강원도 평창의 봉평이라는 시골 마을입니다. 마을 이름조차 쑥대밭(蓬坪)이니 과거의 살림을 짐작할 만 합니다.

읍도 아닌 면소재지인 이 작은 마을은 해마다 이맘 때면 말 그대로 ‘난리’가 납니다. 개별 여행객의 승용차는 물론 단체 관광객을 실은 관광버스가 꾸역꾸역 몰려듭니다. 들판을 가득 채운 메밀꽃 때문입니다.

사실 봉평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가산 이효석의 고향이고 근처에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 외에는 관광지로서 내세울만한 매력이 없었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을 테마로 잡아 너른 들판을 화끈하게 갈아 엎고 메밀을 심은 것이 적중했습니다. 꽃 필 무렵에 축제도 만들었습니다.

관광객은 꽃만 구경하고 가는 게 아닙니다. 메밀가루, 메밀묵, 심지어 베갯속으로 쓸 메밀 껍질까지 삽니다. 뭘 사지 않더라도 메밀 막국수 한 그릇 정도는 먹고 갑니다. 멋진 꽃밭을 보고, 먹고싶고 사고싶었던 것을 해결한 관광객의 표정이 즐겁습니다. 주민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집니다. 잔치를 열고 돈까지 챙기니 얼마나 흐믓할까요. ‘무릇 지역축제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메밀꽃만이 지금의 봉평을 만들었을까요. 그건 분명 아닙니다. 사람들이 주인공입니다. 연일 신문사, 방송사를 찾아 다니며 홍보를 하고, 작은 여행사라도 직접 찾아 다니며 마케팅을 펼친 봉평 사람들의 노력 덕분입니다.

여행업계에서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사실 성공적인 지역 축제의 뒤에는 언제나 이런 사람들의 노력이 있습니다.

지자체 여행관련 부서에 전화를 자주 거는 편입니다. 한참 멀었습니다. 분명 자기 업무인데도 전화를 돌리기 일쑤입니다. 성의 있는 대답을 해주는 담당자도 많지 않습니다. 통화 끝에 몹시 불쾌해지면 꽃이 핀 봉평을 떠올립니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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