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에 발생한 허원근 일병 자살사건이 조작됐다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는 큰 충격을 주었다.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지 않은 채 관계자들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국방부의 특별조사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어제 의문사위는 1986년 6월에 발생한 서울대생 김성수군 자살사건도 타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발표했다. 몸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매달고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된 김군의 경우도 허 일병사건처럼 진실을 밝혀내기가 무척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진실 규명의 최대 장애는 역시 관계기관·관계자들의 비협조와 거짓말이다.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료 제공과 조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관계기관들은 '특별한 사정'을 내세우거나 뚜렷한 이유 없이 불응하는 경우가 많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도 조사에 불응해 동행명령이 결정된 상태다. 더욱이 녹화사업에 관해 조사를 받았던 전 보안사과장은 중요 자료를 소각하고 잠적하는 폭거를 저지르기까지 했다. 어느 학자가 지적한 대로 국가폭력에 대한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과 은폐의 메커니즘이 동시에 작동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 같은 비협조 행태는 의문사위가 9월16일로 법정 시한이 끝나는 한시기구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한 사건에 관련된 직원의 신상자료를 1년에 걸쳐 한 가지씩 제공함으로써 지능적으로 협조를 하지 않기도 했다. 또 위원회의 조사대상인 퇴직 교도관들이 진술내용을 법무부에 보고하는 사실이 확인돼 사실상 법무부가 퇴직 교도관들을 감시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그런데 의문사위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효과적인 대응수단이 없으며 인원 역시 충분하지 못하다. 게다가 의문사위의 시한이 다가옴에 따라 전에 소속돼 있던 기관으로 돌아가야 하는 직원들의 경우에는 자연히 활동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2000년 10월 출범 이후 85건을 접수, 이제까지 겨우 4건을 민주화운동과 관련있다고 인정한 것도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이다. 특별법을 고쳐 의문사위의 시한을 없애고 권한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만약 의문사위의 활동이 미진한 채 종결된다면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진상규명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400일이 넘는 농성 끝에 겨우 특별법 제정이라는 소득을 얻어낸 유가족들이 더 이상 피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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