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춤 하면 흔히 하늘하늘한 치마저고리를 입고 사뿐사뿐 돌아가는 여인네들의 춤사위를 떠올린다. 그러나 옛적에는 강가에서 노닐다 삼현 잡히고 춤을 풀어내던 한량들, 들일 마치고 막걸리 한 사발에 흥이 올라 탈 쓰고 놀이판을 벌이던 농군 남정네들도 있었다.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춤 하나에 인생을 걸어온 여덟 사내들이 풍류방에서, 들녘에서 즐기던 옛 춤들을 불러내 신명나는 놀이판을 벌인다. 9월 6일 오후 7시30분, 7일 오후4시·7시30분 서울 호암아트홀 무대에 오르는 '남무(男舞), 춤추는 처용 아비들'이다. 여덟 춤꾼 가운데 셋은 이미 팔순을 노령이어서 이번이 마지막 무대가 될 지도 모른다.
춤판의 막을 열 문장원(87)은 무형문화재 18호 동래야류(들놀음)로 대표되는 동래 풍류를 온 몸에 익힌 마지막 한량이다. 그가 선보일 동래입춤은 특정한 구성 없이 추는 즉흥춤. 장단을 앞지르거나 뒤서는 엇동작을 적절히 활용해 자칫 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춤에 속도감을 불어넣으면서 관객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추임새를 불러낸다.
황재기(81)는 호남 우도농악의 진수로 꼽히는 고깔 소고춤을 춘다. 팔을 벌려 벼르다가 빠르게 회전하며 한 발을 들어 소고를 치는 앉을상 등 고난도 춤사위가 일품이다.
김덕명(80)은 양산 통도사에서 전해져온 양산사찰 학춤을 선사한다. 훨훨 날다가 내려앉아 두루두루 살피고 먹이를 휙 낚아채는 모습 등을 한 폭의 그림처럼 재현해 보인다.
정인삼(61) 용인민속촌 농악단장은 원님 복장을 하고 경기 도당굿 가락에 맞춰 진쇠(꽹과리)를 두들기며 추는 진쇠춤, 이윤석(54) 고성오광대보존회장은 오광대 놀이에 나오는 춤사위들을 즉흥적으로 엮어내는 덧배기 춤, 무형문화재 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 하용부(47)는 큰 북의 엇박 장단에 맞춰 엇걸음으로 추는 밀양북춤을 공연한다.
김운태(41)가 선보일 채상소고춤은 전립에 연 꼬리처럼 긴 띠를 달고 돌리면서 추는 춤으로, 고깔소고춤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박영수(40)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봉산탈춤과는 무법이 다른 김유경류 봉산탈춤 가운데 가장 활달한 목중춤을 선사한다.
춤판을 기획, 연출한 진옥섭씨는 "여덟 분은 무용계의 좁은 울타리에 연연하지 않고 순수하게 춤을 추어온 진짜배기 춤꾼들"이라면서 "이번 공연을 계기로 도도하고 선 굵은 남성춤의 진가가 재조명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02)766―5210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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