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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북한의 市場실험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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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북한의 市場실험에 바란다

입력
2002.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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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당국이 일부 농가에게 경작한 농산물의 일부를 시장에 내다팔 수 있도록 허용하고, 소비재의 가격과 임금 체계를 대폭 변경하는 등 경제체제의 구조적인 변경을 모색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북한에 관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정보를 접할 수 없는 필자로서는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북한이 시장경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피해야 할 것 같다. 가격과 임금구조의 변경은 시장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 북한 당국이 일방적으로 단행한 것이기 때문이다.북한은 나름대로의 계산으로 보더라도 가격이 원가나 기회비용과 워낙 동떨어져서 비효율이 크다고 판단해 가격구조를 개선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가격구조의 변경은 완벽하게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시장경제와는 별 관계가 없다.

농산물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자본주의 실험은 어느 정도 시장경제 원리를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북한 주민이 굶주리고 있거나 아시아 각지를 헤매고 다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또 구 동구권 국가와 중국, 베트남 등이 이미 오래 전에 상당한 수준의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한 사실을 고려할 때, 이제서야 이러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당국이 시장경제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증거로 해석될 수도 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이 기본적으로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정권이 필요로 하는 만큼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게 별 효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려면 농업뿐 아니라 금융과 제조업을 포함한 전 분야에 자본주의적 경제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또한 개인이나 가족이 운영하는 자영업을 넘어서 대규모의 기업과 금융기관에 시장원리가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이윤 동기에 입각한 주식회사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체제를 조속히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전환하고 무역과 투자 유치를 통해 성장을 추구하는 길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토지와 주택뿐 아니라 금융자산 및 기업의 소유와 관련된 사유재산권을 확립하고,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분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경제제도를 갖추는 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한국도 아직 주식회사의 주주나 금융기관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경제위기를 겪고, 엄청난 비용을 지불한 바 있다. 또한 무역과 투자유치를 위하여 한국이나 외국의 정부, 기업, 개인이 북한에 투자하거나 빌려준 자본에 대한 재산권을 확실하게 보호하는 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이 대외경협을 정치 군사적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부터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 군사적인 요인을 이용하여 한국이나 미국으로부터 돈을 뜯어내겠다는 발상은 21세기의 시장원리보다는 고대 부족국가 시기에나 성행하던 약탈경제의 원리에 가까우며, 장기적으로 북한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이 그 동안 한국과의 접촉에서 한국 기업이 정치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북한과 손해 보는 거래를 서슴지 않거나, 기업의 상업성과 정부의 정책 기능이 명쾌하게 구분되지 않는 사례를 경험한 것도 북한으로서는 좋은 일이 아니다. 시장경제의 본질을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또한 시장경제에서는 대내외적으로 신뢰성이 가장 큰 재산이라는 점을 배워야 한다. 상대방을 속여서 이득을 취한 뒤 딴소리를 하는 것은 길게 보면 득보다 실이 훨씬 더 크고, 이 세상에 계속 속아주는 바보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북한과의 경협에 있어서 돈 몇 푼을 던져주는 것 보다 우리 스스로 시장경제원리에 맞게 행동하고, 그들로 하여금 시장경제원리를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일총 KDI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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