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원로 서양화가들이 가을 화단을 연다. '산(山)의 화가' 유영국(86)씨의 작품세계 전반을 볼 수 있는 '유영국, 한국 추상미술의 기원과 정점'이 30일부터 10월 6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물방울 그림'의 작가 김창열(73)씨는 74번째가 되는 개인전을 29일부터 9월 11일까지 서울 박영덕화랑에서 연다.
유씨는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1세대 작가,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린다. 70여년 간 추상회화의 외길을 걸으며 시대의 유행과는 상관없이 독자적 조형논리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산을 작품세계의 주된 모티프로 채택하면서 그는 서구적 추상미술에다 동양철학적인 자연에 대한 깨달음을 접목시킨다. "반드시 산 속에 들어가 산을 그리지 아니하여도 산을 생각하며 또 상상의 나래를 좇아 그 무궁한 형태와 색감을 대비하는 작업은 내 생애 끝까지 따를 것이다."
회고전 성격의 이번 전시회는 규모가 큰 대작 60여 점으로 유씨의 작품세계를 크게 3기로 나눠 보여준다. 해방 전후 50년대까지의 이른바 절대추상 계열의 작품, 60년대 표현적인 붓 터치가 강한 서정추상 작품, 그리고 70년대 이후 90년대까지 매끈한 화면과 화려한 색채를 강조한 기하추상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일제시대 한국 화단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가 되는 그의 해방 이전 작품 17점이 원작과 사진 등으로 공개된다.
특히 망실된 유씨의 1930년대 도쿄 유학시절 작품 3점을 노환으로 병석에 누운 그를 대신해 장녀인 유리지 서울대교수(공예가)가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문의 (02)720-1020
김창열씨는 72년 물방울 그림을 처음 선보인 이후 독보적 회화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虛)로 돌릴 때 우리들은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물방울 그림은 '우주적 질서 속에 찰나인 삶의 영롱함을 담는 작업'이라는 평을 받았다.
김씨는 이번 전시회에서 두터운 유화로 바닥을 완전히 덮어버리고 그 위에 물방울을 새겨 모노크롬적 평면성을 강조한 새로운 경향의 신작들을 보여준다. 또 90년대 이후 일관해온 천자문과 물방울이 어우러진 '회귀(回歸)' 연작, 칠이 되지 않은 거친 마포를 사용해 그 위에 물방울만 남기는 70∼80년대 작업까지 20여 점의 대작을 내놓아 물방울 그림의 변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한다.
김씨는 2004년 1월부터 두 달 동안 현대미술의 세계적 전시공간인 프랑스 파리의 국립 주드폼 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물방울 그림이 당대의 우뚝한 예술작업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한국인으로 주드폼 미술관에서 공식 전시한 것은 97년 화가 이우환씨에 이어 김씨가 두번째이다. 문의 (02)544-8481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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