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야구선배들을 만나면 배울 점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지금보다 환경이 열악하고 인기도 덜했지만 실업야구의 전성기시절 정말 프로근성으로 똘똘 뭉친 선수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선배 한 분에게 들었던 경험담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사연인즉 이랬다. 1960∼70년대 실업야구 최강은 한일은행이었다. 당시 내로라 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 고정팬이 적지 않았다. 현역감독으로 활동중인 A선배는 팀내 최고참이었다. 은퇴를 앞두고 있었지만 방망이 하나만큼은 녹록치 않았다. 어느 날 고교를 갓 졸업하고 입단한 신출내기 후배B가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을 불쑥 던져 A선배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1사 1,2루찬스에서 A선배가 막 타석에 들어서려던 순간 B후배가 "선배님, 병살타만 치지 마십시오. 차라리 삼진 먹고 그냥 들어오시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라고 상식 밖의 말을 내뱉었던 것. 선후배관계가 범상치 않았던 시절이고 보면 B후배는 대단한 배짱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A선배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후배라 혼낼 수도 없고 해서 끓는 속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참 당돌한 후배라고 생각한 A선배는 그래도 "저놈 물건이 되겠는데"라며 등을 두드려줬다. A선배의 예상대로 B후배는 국내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성장했고 프로출범 후에도 지도자로 꽤 이름을 날렸다.
당시나 지금이나 팬들은 삼진으로 물러난 타자들에게 야유를 보내기 일쑤다. 그러나 팬들이 생각하듯 삼진아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안타는 선이고 삼진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사실 별볼일 없는 안타를 때리는 것보다 차리리 삼진을 먹고 다음타자에게 찬스를 넘기는 게 더 값어치 있는 경우도 적지않다.
10―0으로 리드하는데 11번째 득점을 올리는 안타를 친다고 반드시 좋은 타자는 아니다. 유심히 살펴보면 결정적인 순간 번번이 헛스윙만 하다가 이미 승부가 기운상황에서 영양가 없는 안타를 많이 치는 명선수들이 적지 않다. 반대로 9회말 1―1 동점, 1사 만루기회라고 가정해보자. 최선을 다해 제스윙을 하고 삼진으로 아웃된 타자에게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하지만 어설픈 타격으로 병살타를 친 것보다 삼진을 먹은 게 훨씬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한번의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야구에는 가치있는 삼진, 가치없는 안타가 있다'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거품이 많은데도 인기를 누리는 선수가 있는 반면 스타는 아니지만 팀 플레이를 잘하는 깨소금 같은 선수도 많다. 내가 감독이라면 후자쪽에 훨씬 더 정이 많이 갈 것 같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