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26일 허원근(許元根) 일병 사건에 대해 전면적인 재수사를 시작한다고 밝혀 이 사건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질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의문사진상규명위가 20일 중간조사 발표 후 지속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18년 간 묻혀 있던 진실에 완전히 접근하기까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경과
1984년 4월2일 오전 9∼10시 강원 화천 육군 7사단 3연대 1대대 3중대 폐유류고 근처 울타리에서 숨진 채 발견된 허 일병 사건을 조사한 7사단 헌병대는 M16소총으로 3발을 쏴 자살했다고 결론지었다. 아버지 허영춘(許永春)씨는 "왜 현장에 피도 없냐"며 의문점을 조목조목 정리해 수많은 진정서를 관계기관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2군단 헌병대와 육군 범죄수사단 등이 수사를 벌였지만 자살로 결론이 내려졌으며, 99년 국방부의 민원제기 사망사고 재조사가 진행되던 중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 위원회로 사건이 넘어왔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2000년부터 사건을 재조사한 결과, 허 일병이 중대 간부 술자리가 있었던 새벽 2∼4시 하사관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으며 중대와 대대 등 상급부대가 이를 자살로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의문점
국방부와 위원회가 우선 밝혀야 할 것은 허 일병의 시신에 가해진 2,3번째 총격의 실체다. 의문사위는 중간조사 발표에서 허공에 두 발의 총성을 울리게 함으로써 자살의 정황을 높이려 했으나 당황해서 시신에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당시 부검 결과는 허 일병이 마지막 총격에 사망한 것으로 나와, 2,3번째 총격이 확인사살 목적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경우 살아있는 허 일병에게 추가로 총격을 가함으로써 사망케 했다는 얘기가 돼 고의적인 살인혐의를 적용할 수 있게 된다.
98∼99년 사이 사망한 중대장 부분도 미스터리다. 중대장은 84년 혼자 모든 책임을 지고 구속 기소된 후 강제 예편됐다. 당시 헌병대 수사결과는 중대장이 평소 괴팍하고 폭력적이어서 전령으로 있던 허 일병 자살의 원인이 됐으며, 시신 발견 시점을 조작하려 했고 허 일병 시신 근처에 탄창을 가져다 놓게 하는 등의 현장 조작을 자행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허 일병에게 총을 쏜 범인이 누군지 알았을 중대장이 하사관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무리한 책임전가를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와 함께 의문사위 조사결과, 허 일병 사망 후 열린 대책회의에서 대대급 간부들이 참석한 사실까지만 밝혀내고 상급부대의 은폐조작 가담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단 헌병대 조사 때 목격한 사병들을 상대로 무릎에 곤봉을 끼우고 짓밟는 등 가혹행위가 있었고, 조사 후 포상휴가가 주어진 사실이 드러나 은폐조작이 훨씬 윗선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대대장이 99년 국방부 특조단 조사에서 "중대장이 월북하려다 전령을 죽인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한 진술의 진의도 풀어야 할 수수께끼 중 하나다.
■수사전망과 처벌
의문사위는 중간발표 후 헌병대 관계자 등 3명을 추가로 불러 조사했고 다음달 10일 최종 조사결과 발표 전까지 당시 대대장 등 5명을 더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그러나 의문사위에서 허 일병 사건을 담당하는 조사관은 1명뿐이어서, 84년 이후 군과 국방부 재조사 과정에서의 은폐정도까지를 밝히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지만 국방부가 과연 내부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의문사위 관계자는 "하사관 등 당시 사건관련자는 공소시효가 지나 혐의가 드러나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며 "자칫 이번 사건은 18년 전 핵심 관련자는 모두 놔둔 채 최근의 군 조사관련자만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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