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긴급조치 19호’의 배급사가 어느 일간지 영화 기자를 고소한 일이 있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악평을 써서 흥행을 망쳤다는 게 이유였죠. 억지 웃음을 노린 코미디 같기도 하고, 코미디 영화 ‘긴급조치 19호’의 부록 같기도 합니다. 관객은 꼭두각시가 아닌데 말이죠.10년마다 한 번씩, 영국의 유력한 영화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는 세계 10대 영화를 뽑고 있습니다. 저명한 영화 감독과 평론가들이 지난 10일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1941)을 걸작 중의 걸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선정 이유 가운데는 ‘웰즈는 영화의 셰익스피어’라는 극찬도 있었습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는 셰익스피어만큼 읽힌다는 얘기로 알아들었습니다. 혹시, 최근에 셰익스피어를 읽은 적 있으세요? 그 10대 걸작 중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작품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지 야스지로의 ‘도쿄 이야기’ 본 적 있으세요? 10대 걸작 선정은, 자기네들끼리만 통하는 ‘신화 만들기’가 아닐까 합니다. 여기에 관객들의 자리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35년간 시카고 선타임즈에서 영화를 맡고있는 로저 에버트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자기 견해에 충실하게’ 쓰는 게 영화평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영화 리뷰는 신화의 권위에 기대어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뢰가 갑니다. 그는 데이비드 린치의 ‘블루 벨벳’ 같은 명작을 깎아 내리기도 하고, ‘맨 인 블랙2’ 같은 인기 흥행 영화를 따분하다고 스스럼없이 얘기하기도 합니다.
관객들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신문의 영화 리뷰에 곧바로 반대 의견을 쓸 수 있으며, 별 4개를 받은 영화를 며칠 만에 망하게 할 수 있는 힘도 갖고 있습니다.
관객의 눈에 10대 걸작 선정이나 영화 리뷰는 참고 자료에 불과합니다. 영화 기자나 평론가에겐 관객보다 자기 견해에 충실하게 보도할 의무만이 있을 뿐입니다.
대신 ‘10대 걸작’을 고전의 이름으로 강권할 권리나, 영화 제작자 또는 배급자의 고소를 두려워해 적당히 ‘좋은 게 좋은’ 식으로 쓸 권리는 없습니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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