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 폐쇄적이란 평을 듣는 까닭은 인선의 기준이 자신과의 인연을 강조하기 때문일 것이다. 능력이나 청렴도 등도 물론 감안하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신과 인연맺은 사람이 최우선적 발탁요인이라고 한다. 특이한 인사스타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대통령이 일생동안 만났어야 얼마나 많은 인사들을 만났겠는가.이런 한정된 인재 풀에서 다양성이 생길리 만무하다. 인사 후엔 으레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인색한 평을 자초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여과과정이 이처럼 허술한데 적재적소의 인사는 애당초 기대 밖이다. 이 정부에서 김 대통령과 별다른 인연 없이 발탁된 고위직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한다. 김 대통령의 이런 인사스타일을 두고 세간에서는 'DJ 호주머니 수첩 속에서 나온 인사'라고 비아냥거린다.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인사는 대체로 저항을 받기가 쉽다. 일반국민은 '깜짝 쇼'에서 극도의 소외감을 갖기 때문이다. 인사권자가 '요건 몰랐지'하고 희희낙락하는 사이 민심이 돌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장상 총리서리의 낙마가 그런 예라 할 수 있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총리로 기대를 모았지만 '깜짝 쇼'에 대한 저항이 그만 사태를 그르치고 만 셈이다.
김 대통령의 이런 스타일이 전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비록 자신의 눈높이에서지만 확실한 자기 사람을 쓴다는 이점은 있다. 하지만 시스템보다는 개인적 동기에서 이뤄지는 인사는 항상 뒷말을 남기게 마련이다. 한 사람의 안목이나 생각으로 유능하고 참신한 인사를 고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정권이 집권 내내 편중인사 시비 등에 시달려야 했던 까닭도 이런 탓이다.
김 대통령의 인사스타일 가운데 또 빼놓을 수 없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소수파나 변두리 선호'현상이다. 좋은 환경에서 제대로 교육 받은 사람보다는 역경을 딛고 선 자수성가 형을 택한다. 또 '중심부' 보다는 '주변부' 인사에 더 애착을 갖는다. 다른 정권이라면 청와대 비서관이나 입각이 전혀 불가능했을 인사들 까지 이 정권에서는 장관 하고 수석비서관도 했다.
예를 들어보자. 최단명으로 끝난 안 모 전 법무장관의 경우다. 김 대통령은 발탁이유로 그의 인권변호사 경력을 들었다. 하지만 법조계는 김 대통령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물론 안 장관도 인권변호사 활동을 했을 터이지만 법무장관으로 보상(?)받을 만큼 '중심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청와대 수석에 이어 복지부 장관을 지낸 이 모씨나, 현 노동부 장관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발탁도 학벌이나 경륜보다는 재야 운동권 시절 그들이 김 대통령과 맺은 소중한 인연이 동기가 되지 않았나 보인다.
어제부터 인사청문회에 들어간 장대환 총리서리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청와대가 발탁 이유로 "비전 있는 CEO이자, 국제감각과 역동적 리더십을 갖추었다"고 했지만 언론계 안팎의 반응이 긍정 일변도만은 아니다. 유능한 언론사 CEO라는 측면 보다는 시쳇말로 장가 잘 가서 운 좋게 족벌사주가 된 경우가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역시 검증과정의 소홀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자고 나면 돌출하는 각종 의혹이 이를 말해 준다. 가뜩이나 병풍(兵風)을 둘러싼 '죽기 살기' 정쟁 속에서 청문회라고 제대로 검증을 해낼지 의심스럽다. 6개월밖에 안 남은 김 대통령 임기동안 총리를 두지 못하는 국가적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감정이 무뎌지고 별 것 아닌 일에도 노여움을 잘 타게 된다고 한다. 또 주위의 비판이나 싫은 소리엔 오불관언이 되기 쉽다.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이를 대뇌활동의 노화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집권후반기로 가면 갈수록 '오기인사'로 비쳐지는 김 대통령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임기 말이라 망정이지 등골이 오싹한 일 아닌가.
노진환 주필 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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