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비' '소나티네'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언제나 무표정하다. 코미디언인 '비트 다케시'가 되어 독설과 슬랩스틱 코미디로 웃길 때도 그렇다. 세상에 대해 집착이라고는 없는 표정이다. 당연히 영화 속 그는 가족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도 그는 의붓아버지에게 사정없이 맞고 자라서 "가족이란 남들이 보지 않으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폭탄 같은 말을 한 적도 있다.따뜻한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은 역설적으로 기타노 다케시의 반(反)가족적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기쿠지로(기타노 다케시)는 아이도 없고, 아이한테 관심도 없다. 쉰 살이 넘은 퇴물 야쿠자로 하루종일 빈둥거리며 파친코나 경마장에 가는 일이 낙이다. 아내가 등을 떠미는 바람에 그는 먼 길 떠나는 소년의 보호자로 임명됐다.
할머니와 살고 있는 마사오는 "오래 전 돈 벌러 멀리 떠났다"는 어머니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집을 나온다. 불안한 이웃집 아줌마가 빈둥거리는 남편을 아이의 보호자로 붙여 준 덕에 중년 야쿠자와 집 나온 소년은 짝을 이룬다. 이야기가 새로울 것은 없다. 아이를 귀찮아 하던 기쿠지로가 마사오를 깊이 배려하도록 발전하지만 기막힌 모험담도 반전도 없다.
기쿠지로는 아이를 데리고 경마장에 가서 아이가 들고 나온 돈을 홀랑 날려버리는 것으로 시작, 무전취식과 소소한 사기를 치지만 다양한 인간군이 이 여행에 합류하면서 중년 남자와 소년의 곰살궂은 로드무비는 완성된다.
오토바이 폭주족이지만 섬세한 감정이 넘치는 뚱보, 자동차에 온갖 살림살이를 싣고 다니는 일본판 히피 등 세상과 소외를 자처하는 인물들 모두 잠깐 동안의 보호자로서 아이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애쓴다.(옷을 벗고 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일본식 유머가 적잖지만 따뜻하고 귀여운 소품.
99년 칸영화제에 진출했던 작품으로 일본 영화에 대한 관객 반응이 그간 너무 심드렁한 탓에 이제(30일)야 개봉한다. 12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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