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는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존재를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역마살'을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와 저희 삼 남매를 내버려 둔 채 집을 나가셨습니다. 당연히 삼 남매의 학비와 생활비는 어머니가 벌어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살림까지 차렸다는 아버지가 돌아와 어머니와 결합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어머니도 거부하지만 저희들도 아버지를 모시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달리 기댈 사람도 없을 터인 아버지를 방치한다는 것도 마음 편한 일은 아닙니다. 좋은 해결 방법이 없을까요. (서울 상계동 손씨)
A 아버지란 돈을 벌어 온다는 임무 외에도 아이들과 뒹굴면서 놀아주고, 야단도 치지만 가끔 짜증내는 어머니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주는 존재입니다.
도덕심을 키워주고, 세상을 알려주고, 인생방향을 제시해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어린시절 그런 사랑과 가르침을 받지 못하시고 컸다니 우선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댁 아버님의 '역마살'이란 당신의 책임회피를 좋게 둘러 댄 말이지요. 성품으로 보아 다른 여자와도 그리 행복하게 사시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 변두리를 돌면서 신용도, 인정도, 존경도 얻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왜 법으로 이혼을 하시지 않았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머님으로서는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을 것 입니다. 생활자체에 여념이 없어서, 언젠가는 알거지가 되어 빌면서 돌아올 것이라는 고소한 꿈에서, 아버지 없는 자식들을 만들지 않으려고, 아니면 그간 자식들 몰래 직접·간접으로 소식을 주고 받아 마음 속에 미련이 남아서 이혼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마 이런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요. 남녀관계란 묘해서 자식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어머님과 자식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어느 한쪽에서 '받아들이자'고 하면 마지못해 따라 준다는 식의 해결을 바라는지도 모릅니다. 승자가 된 어머님 입장에서는 좀더 그럴 수가 있습니다. 어머님에게는 그래도 아버님이 평생 유일한 '남자' 가 아닙니까?
받아들이십시오. 단 뜸들이며 천천히! 몇 달쯤 다른 곳에 아버님이 거처하도록 하면서 왕래를 하시도록 하십시오. 가족 각자가 어떻게 반응하고 변할지 두고 보시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해결책은 아들이 강하게 밀어붙여야 부작용이 덜 합니다.
/조두영 서울대 신경정신과 교수 dooyoung@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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