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 영화제가 마침내 검찰 수사의 도마에 올랐다. 올해 39회째인 이 영화제는 영화인협회(이사장 신우철·申禹澈)가 주최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영화계 행사지만 금품 로비 및 인맥에 따른 수상자 선정 등으로 매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연예계 비리를 수사중인 서울지검 강력부는 25일 대종상 영화제 수상자 선정과정에서 연예기획사와 일부 심사위원간 금품이 오간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수상자 선정과정 전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2000년 3월 열린 제37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대룡엔터테인먼트 대표 장용대(張容大·38)씨가 "소속 여배우 H(예명)씨가 신인상을 수상하도록 해 달라"며 영화감독 K씨 등을 통해 3차례 심사위원들에게 850만원을 전달한 사실을 확인, 장씨를 배임증재 등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H씨가 실제로 신인상을 수상한 점에 주목, 당시 심사위원 3,4명을 소환해 선정과정의 특혜 및 금품수수 여부를 확인한 뒤 혐의가 드러나는 대로 전원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연예계 비리 수사과정에서 대종상 수상자 선정로비가 포착돼 별도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영화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C영화사 관계자는 "출품작 선정 단계부터 '수상자가 내정됐다' '주연상은 누구누구' 식으로 소문이 퍼지는 등 상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태"라고 말했고,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특히 신인상 수상자는 영화사나 TV에 주연감으로 내세울 수 있고, 배우에게도 '키워줬다'는 확증을 줄 수 있어 인맥 동원이나 향응 등 온갖 편법이 동원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영화계 인사는 "행사의 권위도 떨어져 영화사 차원의 금품 로비는 줄었으나 일부 매니지먼트사나 영화사에서는 여전히 로비를 일삼고 있다"고 개탄했다.
지난해만 해도 평론과 흥행에서 크게 실패한 '하루'와 '리베라 메'가 각각 4개의 상을 휩쓴 반면 전국 8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친구'(당시 200만명)는 본상을 하나도 수상하지 못해 네티즌의 항의가 빗발쳤다. 당시 고질적인 수상 잡음을 없애겠다며 처음으로 심사에 참여했던 개혁적 성향의 영화인 단체 '영화인회의'는 폐막 후 "불공평한 심사 결과에 책임지겠다"며 집행부가 총사퇴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영화인협회 단독으로 치러진 올해도 역시 시비가 불거졌다. 평론과 흥행에서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2009 로스트 메모리즈'가 14개 부문 후보에 4개상을 수상하자 특정 영화사 봐주기란 비난이 재연됐다.
이 때문에 많은 영화인들은 외국 영화제에 출품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 대종상에는 출품조차 꺼리는 실정이다. 이춘연(李春淵) 영화인회의 이사장은 "미국의 아카데미영화제 위원회와 같은 제3의 기구를 신설해 심사를 맡기는 방법 외 다른 대안은 없다"고 지적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배성규기자 veg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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