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하찮은 일이었지만, 그 하찮은 일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이경준(李敬俊·54) KTF 사장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성공시대의 주인공이다. 그는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마저 포기할 뻔 했지만, 정보통신업계에 즐비한 박사들을 제치고 지난 2일 연간 매출액이 6조원에 달하는 대기업의 사장 자리에 올랐다.
전북 김제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이 사장은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졸지에 가족의 생계를 떠안았다. 그러나 그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주경야독으로 고교를 졸업한 뒤 1968년 말단 공무원 시험(5급을)에 합격, 군산우체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가 맡은 첫 업무는 기업체를 돌아다니며 고장난 무전기를 수리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통신 엔지니어로서의 출발이 그의 인생을 결정했다. 이 사장은 퇴근 후 책과 씨름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 결과 73년 공무원 대상 해외연수 시험에서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 독일 우정성에서 네트워크 설계 등 첨단 통신기술을 배웠다. 78년에는 방송통신대 행정학과에 입학했고, 같은 해 대졸자도 합격하기 어려운 기술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지금도 이 때를 생애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KTF 사장이 됐을 때의 감격도 그 때보다는 못했다.
94년 이 사장은 KT(옛 한국통신)와 광대역종합통신망 개발 등 굵직굵직한 업무를 맡으면서 명성을 날렸다. KTF(옛 한국통신프리텔)에는 98년에 합류, 네트워크부문장을 맡아 이통업계 최단기간인 1년여 만에 전국에 개인휴대통신(PCS) 기지국과 중계기를 설치하는 실력을 발휘했다. 지난해 KT로 복귀한 그는 올 2월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KT 민영화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 사장은 자신의 성공담을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기본을 강조하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소주 두병을 거뜬히 마시는 주량이지만 절대 2차를 가지 않는다. 또 "잘 사는 것보다는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며 1남1녀 두 자녀의 이름에 모두 '바를 정(正)'자를 넣어 지었다.
이 사장은 "KTF도 원칙과 기본에 따라 경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IMT-2000 사업체인 KT아이컴과의 합병, SK텔레콤과의 경쟁전략, 주가관리 등 당면한 경영현안을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KT아이컴과의 합병은 주가가 적정수준에 오르면 곧바로 추진할 것이며, 합병비율은 KT아이컴 주식 3주를 KTF 주식 1주와 바꾸는 게 적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IMT-2000 서비스에 대해서는 당초 방침대로 비동기식 서비스를 추진하겠지만, 기존의 2세대 CDMA 서비스에도 여유가 있는 만큼 시행 시기는 탄력적으로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순이익 규모에 대해서는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5,000억∼6,000억원의 순이익을 예상하고 있으나 최근 접속료를 12%나 인하해 목표치를 다소 낮춰야 할 것 같다"며 "흑자 규모가 크다고는 하지만 누적기준으로는 올해부터 흑자로 돌아섰을 뿐"이라고 말해 이동통신업계가 엄살을 부린다는 시각을 부정했다. 그는 또 "외국 주주들의 요구 때문에 올해에는 회사 설립 이후 최초의 배당을 검토하고 있으나, 이익을 배당하기 보다는 내부에 유보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선발업자인 SK텔레콤을 추격하는 현재의 경쟁구도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훨씬 공격적인 입장을 표시했다. 이 사장은 "모기업 KT와의 유무선 통합서비스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에 대해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는 핵심 요소로, KTF 이동통신 서비스와 KT의 무선랜을 결합한 복합상품을 곧 시장에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이 사장은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뤄진다는 믿음을 갖고, KTF가 통신업계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세계 일류 기업으로 인정받도록 정도 경영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이경준 사장은 누구
1948년 전북 김제
방송통신대, 연세대 산업대학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1968년 군산우체국(5급을)
1975∼1976년 독일
1978년 제14회 기술고등고시 합격
1997년 전기통신공사 네트워크본부 시설운용실장
1998년 한국통신프리텔 네트워크부문장
2002년 KT 기획조정실장(전무)
2002년 KTF 대표이사 사장
남궁애련씨와 1남1녀
■KTF는 어떤 회사
KTF는 1997년 1월 KT의 이동통신 자회사로 설립됐다. 설립 당시에는 한국통신프리텔이라는 사명을 썼지만 지난해 5월 한솔엠닷컴과의 합병을 마무리하면서 이름을 'KTF'로 바꿨다. KT가 대주주이며, 세계 최대 IT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등도 지분 참여를 하고 있다. 소액주주까지 포함하면 6만여명이 지분을 갖고 있다.
모기업인 KT와의 공동 마케팅으로 설립 이후 평균 6개월마다 가입자가 100만명씩 늘어나는 초고속 성장을 거듭, 2000년 초에는 '세계 최단기간 최다 무선통신가입자 확보'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대표 브랜드인 KTF를 중심으로 성별과 연령별로 총 9개의 하위 브랜드를 이용하는 타깃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무선인터넷 부문은 '매직엔(Magic n)', n세대는 '나(Na)', 1318세대는 '비기(Bigi)'라는 브랜드로 공략하고 있으며, 여성전용 브랜드 '드라마(Drama)', 직장인을 위한 '메인(Main)', 기업단위 고객을 겨냥한 '비즈(Viz)'라는 브랜드도 운영 중이다. 또 세계 최초 1x EV-DO 서비스를 통한 동기식 IMT-2000 서비스 브랜드는 'Fimm', 모바일 커머스 브랜드는 'K-merce'이다.
KTF는 2001년에는 연말 기준 가입자 960만명, 총매출 4조5,000억원, 당기순이익 4,330억원의 실적을 올렸으며, 2002년에는 연말기준 가입자 1,070만명, 총매출은 6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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