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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세종병원/"20년간 1만7,200여명 심장수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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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세종병원/"20년간 1만7,200여명 심장수술 했어요"

입력
2002.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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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2시 경기 부천시 소사구의 부천세종병원 2층 수술실. 수술침대 한가운데 조막만한 신생아가 누워있다. 2.6㎏, 생후 5일. 팔과 머리 등에 갖가지 줄을 연결한 채 누운 신생아 주변에 심폐기, 체외순환기, 각종 모니터 등이 위압적으로 늘어서 있다. 수술실은 차다. 섭씨 약 15도. 수술동안 잠시 멈출 아기의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수술방마다 온도를 제각각 조절할 수 있는 설비는 이 병원이 유일하다. 수술실에 비해 너무 작은 이 아기는 심실이 하나. '파충류의 심장'을 갖고 태어난 그는 이제 몇 시간이 될지 모를 수술에 들어갈 참이다. 이러한 복잡 심장기형은 수술 후에도 정상 회복을 보장하진 못한다.

■유일한 심장병 특수진료기관

1982년 8월20일 첫 진료를 시작한 뒤 20년동안 부천세종병원은 한결같이 절박한 심장수술환자를 맞아왔다. 이 아기는 개원 이후 1만 2,638번째 개심술 환자. 총 심장수술 1만 7,276명이라는 기록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민간병원이면서 병상이 400개뿐인 중소병원이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유일한 심장병 특수진료기관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미 오전 8시부터 4시간 신생아 수술을 한차례 마친 흉부외과 김웅한 과장은 두 번째 수술이 준비되는 동안 간단히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수술실 옆에 붙은 중환자실에 들러보니 오전 수술 환자는 다행히 심장이 안정적이다.

1시간 정도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현미경을 대고 집도하는 의사와 심폐기사, 간호사 등 7, 8명이 아기를 둘러싸고 분주하다. 호두만한 심장과 미세한 혈관에 집중해야 하는 김 과장은 연신 큰소리로 스태프를 닦달하고 있다. 이번 수술도 짧아야 오후 7시, 길면 밤에야 끝난다.

부천세종병원 심장수술 전문의들의 하루는 늘 이렇다. 김 과장은 오전 7시∼7시30분 출근해 8시 각 과 전문의들이 모인 컨퍼런스에서 특정 환자에게 가장 알맞은 수술법과 치료법이 무엇일지를 논의하고, 하루 1, 2차례의 수술을 마친 뒤엔 중환자실을 돌아보는 게 일이다. 퇴근은 오후 9∼10시. 가정이나 사생활은 '없다'고 해야 옳다. "물론 힘듭니다. 특히 대학병원과 달라 인턴, 레지던트가 없어 과장이 환자를 돌보는 모든 일을 해야 하거든요. 그 점이 환자 입장에선 좋겠죠. 젊은 의사로서도 자기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선 만족스럽습니다."(김웅한 과장)

■"심장醫 사관학교라 불려요"

규모에 비해 수술이 잦고 환자처치를 직접 하기 때문에 이 병원의 30∼40대 젊은 의사들은 짧은 시간에 실력이 쌓인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이직이 잦다. 대학병원으로 쉽게 스카우트되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심장이식수술에 성공한 서울아산병원 송명근 교수와 같은 병원 서동만 교수, 삼성서울병원 이흥재 강이석 박표원 이영탁 교수, 삼성서울병원을 거쳐 실버타운인 노블카운티클리닉으로 간 채 원 원장, 중앙길병원 박국양 교수 등이 모두 이 병원 출신이다. 한광수 병원장은 "우리 병원이 심장 전문의의 '사관학교' 아닙니까"라고 말한다.

부천세종병원이 많은 수술과 높은 성공률을 유지하는 이유는 '팀워크'. 병원 규모가 작다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다. 교수-제자의 권위주의적 관행이 없고 환자에 대해선 누구나 자유롭게 토론을 벌인다. 젊은 의사들끼리 허물없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데다가 과 사이 장벽도 없다. 단적으로 이 병원엔 다른 과에 협진을 요청하는 '의뢰서'가 없다. 그냥 몇 걸음 걸어가 직접 이야기하면 그 뿐이다. 회진도 함께 돌면서 긴급상황에 즉각 대처가 가능하다. 의뢰서를 접수하고 답신을 기다리다 12시간이 후딱 지나는 대형병원과는 대조적이다.

■"병원 작은게 팀워크에 도움"

부천세종병원의 '심장특화'는 박영관 이사장이 병원을 설립했을 때부터다. 그는 심장병 수술에 대한 자신의 소명의식을 말할 때마다 한가지 가슴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 한양대 교수 시절 그를 찾아온 12살짜리 여자아이의 일이다. 아이는 수술이 시급했지만 집안이 어려워 수술을 포기했고, 잊혀졌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나 아이 아버지가 부천세종병원으로 박 이사장을 찾아왔다. "그 동안 돈을 많이 벌었으니 이제 수술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박 이사장은 지금도 "심장병은 95%가 수술을 통해 정상인의 삶을 찾을 수 있지만 시기를 놓치면 불치병이 되고 만다"며 "더 많은 아이들이 심장수술을 제 때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형편 어려운 환자는 후원연결

박상복 심장병 상담실장은 혹 경제적 곤란이 있는 환자들을 한국심장재단, 한국어린이보호재단, 서울시 약사회, 여의도순복음교회 등에 연결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한다. 그는 "이 단체들의 후원을 받아 수술한 환자들이 7,200명이나 된다"며 "최근엔 조선족과 외국인으로 무료수술의 혜택을 넓히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병원 전체가 화려한 것은 아니다. 중소병원으로서 "심장질환을 제외하곤 역시 환자들이 크고 깨끗한 병원으로 몰리기에"(박영관 이사장) 경영난이 고민이고, "좋은 의사들이 오래 붙어있어야 하는데…"(한광수 병원장)하는 아쉬움도 간절하다. 김웅한 과장은 혹 결과가 좋지 않은 환자의 부모가 "이럴 바에야 대학병원에서 수술할 걸"하는 반응을 보일까 가장 부담스럽다.

그래도 이들은 다시 수술환자를 맞는다. 파랗던 입술이 빨개지고, 통통하게 살져서 소아과를 찾고, 공항에서 병원까지 업혀온 환자가 건강하게 걸어나가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들은 다른 일을 생각할 수 없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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