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7월 처음으로 중국 옌볜 조선족 자치주를 방문했다. 오랜 여행 끝에 옌지 공항 밖으로 나오자 주변에 우리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한글을 크게 쓰고 그 밑에 조그맣게 중국어 간자를 써넣었다.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비록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고 북한에서 사용하는 표현이었지만 북한을 지척에 두고 우리말 간판을 보는 느낌은 감격스러웠다. 거기까지 간 것은 바로 북한 책을 구하기 위해서 였다.대전에서 40여년간 서점을 꾸려온 나는 책을 소개하고 안내하는데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88서울올림픽 직전 대학 교수들로부터 북한 도서를 구입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당황했다. 외국어도 아닌 우리말(북한) 책 구입을 안내할 수 없다니 부끄러웠다. 천하의 '책쟁이'가 되겠다는 꿈이 무너지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90년 여름 홍콩→광둥→베이징→선양→옌지로 간 것이다. 당시 옌지의 천지월간사 이상각 총편(사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천지월간사 서가에서 몇 권의 북한 책(평양 발행)도 구할 수 있었다. 처음 접한 북한 책이다. 북한과 직접 교류가 불가능한 때여서 천지월간사를 중간루트로 삼았다.
지난 10여년간 매년 2∼3차례 옌지를 방문해 천지월간사과 교류하면서 책을 하나씩 둘씩 구입했다. 그러나 북한도서 취급 인가를 취득한 1999년 7월까지 그 책들을 천지월간사 창고에 쌓아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9년만에 북한 책을 한국에 갖고 들어온 셈이다.
책을 반입했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북한 도서를 구입해 연구하는 기관은 대학교 등 30여 곳 정도에 불과해 재정문제가 걸렸다. 다행히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로 민족통일 염원이 분출되면서 북한 책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래서 2000년 청주인쇄출판 박람회, 2001 서울국제도서전, 2002 서울국제도서전과 2002 북메세 등에서 '책으로 가는 평양' 행사를 기획했고, 북한 책을 소개했다. 10월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세계도서박람회에서 '책으로 가는 평양' 행사를 열 계획이다.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제 많은 꿈을 이뤘다. 꿈을 이루도록 도와준 중국 옌지 조선족 자치주 친구들과 만났던 그 해의 7월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김주팔 대훈서적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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