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암세포적 존재인 적조(赤潮)가 올해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확실한 예방책이나 구제책이 없어 어민들은 가슴만 태우고 있다.올해 적조피해는 이미 20억원을 넘어섰다. 11일 전남 여수시 남면 우황리 일대 20여개 해상가두리양식장에서 감성돔, 우럭, 볼락 등 50여만 마리가 몰살했고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경호동 일대, 경남 남해도 미조, 통영시 연화도 일대 등에서도 모두 280여만 마리의 물고기가 집단 폐사했다. 적조피해는 95년 764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도 84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해양수산부 조사에 따르면 6월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 양식장에서 입식중인 양식어류는 모두 4억5,000만 마리. 적조가 통상 9월 중순까지 지속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생명은 적조 앞에서 '바람 앞의 등불'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적조발생과 관련된 학설도 분분하다. 부산대 이동규(해양과학과) 교수팀은 최근 논문을 통해 '유해성 적조의 원산지가 되고 있는 남해 나로도 해역에서의 코클로디니움 발생은 저층수온 상승으로 인한 휴면포자의 발아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 관심을 끌었다. 이는 적조발생이 육지로부터의 과도한 영양염의 공급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는 통설과 다른 것이다.
적조피해는 삼국사기나 이조실록에도 기록될 정도로 역사가 깊지만 최근까지 확실한 구제책을 발견하지 못해 속수무책이다. 현재 약물 살포, 천적 미생물 양성 등 다양한 방제책이 연구되고 있는데 실효성 면에서 채택되고 있는 방법은 황토 전해수 살포 정도이다. 그러나 살포기의 경우 대당 가격이 1억원이 넘고 황토도 톤 당 1만5,000원에 이르러 영세 어민들에게는 부담이 큰 방제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적조방제가 어려운 것은 매우 돌발적이기 때문이다. 적조발생과 피해 추이는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 등 외부요인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현재의 과학기술장비로도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최근 피해를 입은 여수시 남면 우황리 일대 가두리양식장에서도 멀쩡했던 양식어류가 하루아침에 허연 배를 드러낸 채 몰살했다.
이 같은 돌발성 때문에 국립수산과학원은 올해 적조예보단계를 유해성출현-주의보-경보-해제 등 4단계로 확대하고 인공위성 표류추적 장치 등 첨단장비를 사용해 적조정보 분석에 임하고 있으나 피해를 막는 데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적조 전문가들은 "적조 예찰과 방제가 수산과학원과 시·도로 이원화돼 있는 것도 방제에 장애가 되고 있다"며 "수산과학원에 비상 방제기능을 부여하는 등 적극적인 피해예방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부산=김창배기자kimcb@hk.co.kr
■적조란
적조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이상 증식해 바닷물 색깔이 적색, 황색 등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대부분 어류치어나 굴 등 패류의 먹이가 되는 무해성 생물이지만 코클로디니움과 짐노디니움 등 유해종은 강한 점액성을 띠어 고밀도화 할 경우 물고기의 아가미 등에 달라붙어 질식사 시킨다. 90년대 초에는 지로디니움과 짐노디니움 등 다양한 유해종이 활동했지만 해양수질오염이 가속화된 95년 이후에는 악성 유해종인 코클로디니움으로 통일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내성이 더 강한 유해종이 출현할 가능성도 높다.
■인터뷰/국립수산과학원 김학균 해양환경부장
"적조는 급속한 산업화와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낳은 사생아입니다. 이제 환경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는 만큼 날로 늘고 있는 육지의 오염물질을 차단, 적조를 근본적으로 줄여 나가야 합니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 25년 동안 적조를 연구해 온 '적조박사' 김학균(金鶴均·53·사진) 해양환경부장은 "적조는 육지의 영양염류가 바다로 흘러 들어 부영양화한데 따른 바다의 1차적 경고일 뿐이며 이를 내버려 둘 경우 바다에 아무런 생물체도 살 수 없는 엄청난 재앙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70년대에 심각한 적조피해를 입었던 일본과 미국의 경우 오염물질 총량규제제도를 도입, 적조를 제압하고 있다"는 그는 "무엇보다도 배출수 규제강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남해안이 바깥 바닷물의 유입이 활발하지 못한 폐쇄성 내만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아 적조확산의 원인이 되므로 적조생물의 모태가 되는 해저 퇴적물 준설도 병행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그는 적조퇴치법에 대해 "퇴치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황토살포가 가장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이며 값도 싸다"며 "이 때문에 미국 일본 중국에서도 앞 다퉈 우리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토는 영양염류에서 부영양화를 촉진하는 인(P)을 제거하고 피조개 굴 꼬막 등 패류에 철분을 공급해주는 효과도 크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부산=김창배기자 kimcb@hk.co.kr
■적조방제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적조방제책은 황토 살포이다.
전문가들은 적조가 발생했을 때 일반 황토살포기 대신 전해수 황토살포기를 사용하면 적조구제효율을 50%이상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전해수 황토 살포기는 우선 조준 효과가 높아 경제적이다. 또 해수를 전기분해 해 만들어진 산성과 알카리수가 적조생물세포를 파괴하고 황토의 흡착력을 향상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한편 최근 황토 살포는 단기적인 효과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해롭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양한춘(梁漢春) 전 여수대 교수는 "황토를 살포할 경우 황토 입자가 적조생물과 결합해 일시적인 방제효과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바다 밑바닥에 황토미립자로 구성된 점액질을 형성, 산성화한다"며 "황토 대신 고토와 생석회를 뿌리는 방식이 적조를 막을 수 있다" 고 주장했다.
또 부경대 이제근 교수팀은 최근 산업폐기물을 재활용한 적조 제거 물질 제오플럭(Zeofloc)을 개발, 22일 시험살포를 실시했다. 실험결과 황토보다 10분의 1정도 적은 양의 제오플럭을 바다에 뿌리자 적조 생물인 코클로디니움이 완전히 없어졌다. 이제근 교수는 "제오플럭은 황토보다 효율적으로 적조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배기자 kimcb@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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