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소설가 샤를 페르디낭 라뮈의 '사스네르의 비극'(나무와숲 발행)은 1926년에 '산의 대공포'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작품으로, 사스네르라는 알프스 지역의 고지대 목초지 개발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의 갈등,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에 대한 외경을 다룬 소설이다.산간마을 구장 모리스 프랄롱이 마을 회의를 주재하는 장면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젊은이들은 마을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20년 동안 방치된 사스네르 초원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이든 사람들은 "그곳을 함부로 범하면 사람이 죽는다"고 반대하면서 격론이 벌어진다. 투표 끝에 사스네르 개발이 확정되고, 결혼 비용을 모으고 있는 조제프, 목초지 개발을 주도했던 크리탱, 바르텔미 노인, 마을의 왕따 클루 등이 사스네르로 올라간다.
그러나 바르텔미 노인이 사스네르에서 사람들이 이유를 알 수 없이 하나둘씩 죽어가던 20년 전 비극을 떠올리면서 알프스 산정엔 공포가 내려앉는다. 소리 하나 없는 완벽한 밤의 침묵 속에 갇힌 샬레(알프스 산정의 오두막), 노인이 털어놓는 죽음의 회상. 다음날 일행 중 한 소년이 '지붕 위에 누군가 걷는 소리가 들린다'며 공포에 질려 산에서 내려간다. 소들이 전염병에 걸리고 사스네르 목초지가 고립되면서 사람들의 공포는 더욱 커진다. 산 위의 사람들은 날마다 소를 도살하고 파묻고, 마을 사람들은 전염병이 돌 것을 우려해 목초지와의 관계를 두절시킨다.
작가가 묘사하는 알프스 산의 무서움과 아름다움은 변화무쌍하기 그지없다. '인간의 온갖 부드러운 삶으로부터 멀리, 그리고 높이 떨어져 있는 저 알프스라는 산 위의 고독한 나라'엔 알퐁스 도데의 '별'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움과 함께 불길한 그림자가 공존한다. 이 소설은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배고픔 사이에서 벌거벗겨진 인간 조건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산은 짙은 안개로 자기를 숨기기도 하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계곡을 두어 허방을 짚게도 만든다. 인간의 지혜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자연의 적의(敵意)를 으스스하게 형상화하는 저자의 솜씨는 단연 일급이다.
공포의 실체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이 질문을 풀기 위해 독자들은 페이지를 계속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다. "산은 산 자신의 생각, 산 자신의 의지가 있는 것이다."라는 마지막 구절에 왜 소름이 돋는지는 그때 가서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라뮈(1878- 1947)는 프랑스의 거장 장 지오노 등에게 영향을 미쳤고,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에 시를 붙이기도 했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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