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도 소수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소외와 억압으로 위축됐던 데서 벗어나 과감한 ‘커밍아웃’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다르게 사는 사람들’에는 트랜스젠더, 넝마주이, 레즈비언(동성애자), 장애 여성, 외국인 노동자, 빈민 어린이, 비전향 장기수, 가상공간의 공산주의자 등 우리 사회 소수자들의 당당한 자기 목소리가 담겨 있다. 다수에 속하지 않으면 비정상으로 몰아세우는 우리 사회의 편협성 때문에 겪어야 했던 수난이 주를 이루지만, 소수자였기에 체득할 수 있었던 ‘어울림과 나눔’의 경험을 담고 있기도 하다.
육체적 성을 정신적 성으로 바꿔 사는 이의 목소리는 남자로 태어나 여자로 살아가고 있는 김 비씨가 들려준다. 대학시절 강박관념처럼 양복바지와 셔츠 차림으로 다니며 남자가 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김씨. 사랑을 느낀 남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성전환 수술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조차 푸대접을 받았던 그는 이제 영어강사와 소설가로 누구보다 당당한 여성의 삶을 살고 있다. 김씨는 남들 앞에서 서슴없이 1자로 시작되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학원에서도 트랜스젠더임을 숨기지 않는다. 비록 평범하게 살 수는 없지만 주눅들고 억눌려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자각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이 사회가 좀 더 올바르게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이분법적인지 보여주어야 한다”며 다수의 세계를 질타한다.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기보다는 외모나 성적 호기심 위주로 저급하게 흘러간 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넝마공동체를 이끄는 윤팔병씨를 비롯한 넝마주이들은 더러운 쓰레기를 뒤적이지만 자신들이 결코 ‘더러운’ 존재가 아니며 생활의 방편이 다른 이웃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대학 교수이기를 거부하고 농부를 선택한 윤구병씨의 형이기도 한 윤씨는 70년대 부산 노숙자 합숙소 시절 노숙자에게 기생해 폭행과 갈취를 일삼는 부두 깡패들을 몰아내고, 그곳에 야학공부방을 세워 넝마주이들이 어떻게 자립의 희망을 키워나갔는지 보여준다.
1998년 3월 중국 동포 김인성씨는 일하던 공장 벽에 스프레이로 “한국이 슬프다”는 유서를 써놓고는 분실자살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 중국 동포의 집’을 운영하며 외국인 노동자 인권운동을 하는 김해성 목사는 이처럼 불법체류라는 약점 때문에 임금체불 산업재해 질병 폭행 사기 등 온갖 핍박을 감당해야 했던 외국인 노동자들의 분노를 생생히 들려준다.
또 레즈비언 모임 ‘끼리끼리’에서 활동 중인 동성애자 김송혜숙씨, 지체장애 3급의 장애인으로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활동 중인 김효진씨, 비전향 장기수 정순택씨, ‘chora@hanmir.com’이란 이메일로 활동 중인 한 사이버 논객 등도 각자의 위치에서 다수자들이 소수자들을 어떻게 포용하고 더불어 살아갈 것인지,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소수자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다. 계간지 ‘진보평론’에 1999년부터 4년간 실린 글 가운데 수작을 윤수종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가 추렸다.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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