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3일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은 북ㆍ러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를 내외에 과시하는 자리였다.특히 푸틴 대통령이 무려 2시간여 진행된 회담과 만찬 내용에 대해 직접 브리핑함으로써, 양국은 한반도 및 국제정세에 공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00년과 지난해 정상회담이 구 소련 붕괴 후 소원해진 관계를 복원하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회담은 신뢰 관계를 천명하는 성격이 강했다.
2000년 이후 3번째로 열린 이번 정상회담은 대외관계 개선을 추진 중인 북한과 최근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견제구를 던지기 시작한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재확인한 자리이기도 했다.
북한은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보여줌으로써 다음달부터 가시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고자 했고, 러시아는 북한을 지렛대로 대 한반도 영향력 복원을 꾀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처럼 미사일 실험발사 재유예를 언급했는지는 불투명하지만, 양국 정상은 핵ㆍ재래식 무기 등 북미대화의 핵심 의제들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을 게 확실하다.
푸틴 대통령이 북ㆍ러 국경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면, 미국의 대북 핵사찰 및 북한의 경수로 건설 지연보상 요구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한반도 정세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은 특히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사업의 추진 방안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대북 전력지원 문제 등을 언급하며 강도 있게 김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했고, 김 위원장도 7차 남북 장관급회담 결과를 설명하며 경의선ㆍ동해선 연결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27일 서울서 개막하는 남북 경협추진위 2차회의의 철도연결 논의도 상당한 탄력을 받게 됐고, 이와 연계해 북한내 철도현대화 문제가 동북아의 화두로 부상했다.
두 정상은 그러나 다른 경협 사안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실리적 접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극동지역 벌목량 및 곡물재배, 어업협력 확대 문제 등은 양국 모두에게 실익이 되는 것들이다.
북한은 연해주 지역과의 교역확대를 통해 지난달부터 단행한 경제개혁 조치에 탄력을 주고자 했다. 지난해 북ㆍ러간 교역액 1억 달러 가운데 80% 가량이 극동지역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양국의 경제협력은 55억 달러나 되는 북한의 대러 부채 등이 걸림돌로 작용, 전기를 마련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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