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8월24일 일본 영화감독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가 60세로 작고했다. 미조구치는 오즈 야스시로(小津安二郞),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와 함께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이다.특히 프랑스 누벨 바그 영화인들 사이에서 미조구치에 대한 평가는 거의 절대적이다. 도쿄(東京)에서 태어난 미조구치는 20대에 배우로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이내 연출로 돌아선 그는 ‘거리 스케치’ ‘도회 교향악(都會交響樂)’ 등을 히트시키며 1920년대의 일본 영화붐에 일조했다. 독창적인 영화를 찍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중반에 들어서다.
1939년의 ‘늦가을 국화 이야기’로 시작된, 메이지(明治)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일련의 시대물들은 전기(前期) 미조구치의 명품으로 평가된다.
미조구치의 영화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특유의 탐미적 리얼리즘 때문이다. 그는 주로 남성 지배 사회의 소외된 여성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등장 인물을 먼 거리에 두고 찍는 롱테이크 촬영 기법은 영상의 탐미적 분위기를 더욱 강화했다.
이미 1930년대부터 롱테이크를 즐겼다는 점에서 미조구치는 오손 웰스나 루키노 비스콘티의 선배였다.
미조구치의 대표작으로는 흔히 ‘오하루의 일생’(1952)과 ‘우게쓰이야기’(1953)를 꼽는다. 17세기 일본 봉건사회를 배경으로 남자들에게 연이어 버림받은 뒤 사창가를 거쳐 비구니가 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오하루의 일생’은 일본판 ‘여자의 일생’이라고 할 만하다.
16세기의 귀신 이야기를 소재로 취해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농부와 사무라이가 되고자 하는 농부의 대조적 삶을 따라가며 이들의 욕망과 사회의 혼란을 포개는 ‘우게쓰이야기’는 유명한 원신 원컷 기법(한 화면이 한 장면을 이루는 롱테이크)으로 일관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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