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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과학영재학교 선발시험 르포/"신의 입장서 새 태양계를 구성?" 9시간 난제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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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과학영재학교 선발시험 르포/"신의 입장서 새 태양계를 구성?" 9시간 난제풀이

입력
2002.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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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끝났네. 그래도문제가 재미있지 않니?” “너는 어떤 공식으로 문제를 풀었어?” 19일 오후 6시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영재교육센터. 장장 9시간 동안에 걸친과학영재학교 신입생 선발 3단계 첫 과목 시험이 끝나자 고사장 복도가 시끌벅적하다. 고사장을 빠져 나오는 앳된 얼굴의 중학생들. 내년 3월 개교할과학영재학교 첫 신입생 선발시험에 지원한 미래 과학한국의 주인공이다.그들은 왜 영재학교를 지원했을까. 이들을 뽑는 출제위원과 과학영재학교 선생님들은 영재를 어떻게 가르칠 계획일까. 자신의 자식이영재이기를 바라는 한국의 학부모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수많은 궁금증 속에서 영재학교 신입생 최종 선발과정인 3차 과학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을지켜봤다.

#19일 오전 9시

잔뜩 굳은 얼굴. 24명씩 9개 고사장으로 나누어 책상앞에 앉은 수험생들의 표정에는 긴장이 역력하다. 그럴 만도 하다. 한 과목시험시간이 무려 9시간. 수리과학 연구과제 수행시험은 그렇게 긴장된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중학교 1학년 학생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모두 216명이 2차 시험을 통과했다. 전국에서 영재학교 1기생에 지원한 1,192명중 거르고 걸러진 한국의 예비 영재들이다. 수학, 과학 경시대회에 한 두 번씩은 나가봤고, 학교에서 수학 과학 성적은 최상위권이라는 그들이지만‘과학영재학교’ 선발시험에 주눅이 들 수 밖에 없다.

전날 기숙사에서 짐을 풀고 이것저것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준비를 했건만 시험이 어떤 식으로 치러질지 아는 사람은 없다. 연필과영어사전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책상 위에 시험과제가 놓여지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19일 오전 10시

자료집을 이리저리 뒤적이던 학생들이 무언가 계산을 하고 끄적이기 시작한다. 수학과 물리학 영역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수리과학’ 시험은 9시간 동안 해결해야 할과제와 그에 관한 자료집만 덜렁 주어진 상태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새로운 태양계 구성과 중력이 큰 주제다.

‘2100년 지구의 자원이 고갈돼지구와 같은 새로운 행성을 찾아나섰다. 신의 입장에서 주어진 수치의 별 4개로 새로운 태양계를 구성하면 어떻게 될까’ 가 첫 번째 문제다. 새로운 태양계의 지구 속에서 음력과 양력 달력을 작성하는 문제 등 어떤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과학적인 계산과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들이다. 자료집은 더욱 황당하다. 힘의 정의와 원리부터 뉴턴의 법칙, 케플러의 법칙,블랙홀 등에 관한 한글과 영어 대학교재가 주어져 있고, 심지어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의 음력, 양력 구분에 관한 한문교재까지 제시됐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학생이 대부분이지만 미소를 잃지 않는다. 문제가 어렵기는 하지만 흥미롭다는 반응이다. 물론 벌써부터 엎드려자는 수험생도 있다.

#19일 오후 1시

드디어 점심시간. 그러나 수험생들은 고사장을 떠날 수 없다. 시험지를 옆으로 밀어두고 구내식당에서 만든 도시락으로 잠시 허기를때운다. 시험을 감독하는 부산 과학고 교사들은 걱정이다. “대학원에서 시험을 봐도보통 오전 오후로 과목을 나눠 보잖아요. 어린 학생들이 쓰러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죠.”

하지만 기우였다. ‘돌도 씹어 먹는다’는 1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은 10여분 만에 점심을 뚝딱 해치우고 다시 문제 속으로 몰입해갔다.그러나 KAIST 영재전담 김훈 교수는 “조금 더 즐기면서 문제를풀었으면 좋겠다”며 “영재는 문제 푸는 기계가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가 번뜩이는 학생들 아닌가”라고 안타까워했다.

#19일 오후 3시

고사본부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한 수험생의 어머니가 서울에서 학생의 신발을 들고 찾아왔다. 사연은 이랬다. 학생이 발톱을 다쳐슬리퍼를 신고 있는데 면접에서 이것이 감점요인이 될까 걱정된다고 오전부터 전화로 사정을 이야기하다 급기야 신발을 챙겨 직접 내려 온 것이다.

“저런 어머니들의 지극정성이 지금의 한국 교육을 이끌어왔죠. 하지만 영재는 주변의 도움보다도 스스로의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3차시험 출제위원장 KAIST 물리학과 김수용 교수의 감상이다.

#19일 오후 6시

수험생들은 갖가지 수학공식과 천체물리학, 천문학 지식을 이용해 가정, 모델, 발상 및 해결과정 등을 바탕으로 가상 사고실험(실제실험기구가 아닌 사고만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거친 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답안지에 빼곡히 공식과 그림, 자신이 과제를 선택한 이유와 풀이과정이쓰여있다. 이 보고서에 대한 발표면접이 이틀 뒤에 있기 때문에 단순히 문제를 풀었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답안지를 제출하고 삼삼오오 식당으로 몰려가는 학생들에게 시험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응용수학자가 되고 싶다는 한 중3 남학생은“일반 경시대회는 시험시간이 대개 세 시간인데 아홉 시간동안 앉아 있기 힘들었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래도 풀어가는 과정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수험생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중1 남학생은 “재미있는 문제와 하루 종일 뒹굴 수 있어 좋았다”고 답했다. 수학과 과학이 재미있다? “내일 시험 걱정은 잊고오후 10시인 취침시간까지 서울보다 맑은 대전 밤하늘 별을 관측하겠다”는 중2 여학생의 답변은 더욱 놀라웠다.

#20일 오전 9시

두 번째 시험이 시작됐다.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복합과학’ 영역시험이다. 전날과 마찬가지로자료집과 문제지가 주어졌다. 복합과학 문제의 주제는 ‘물’. 물의 화학구조부터 모세관현상, 증산작용, 지구 내에서 물의 순환, 휴먼 게놈 프로젝트까지 자료는다양하다. 다시 9시간의 악전고투가 시작됐다. 하지만 진정한 영재를 꿈꾸는 그들에게 두려움은 없었다./대전=정상원기자 ornot@hk.co.kr

■김수용 출제위원장

교수 10여명 사흘 합숙 정답없는 문제도 출제

“문제를 보면 갑갑할텐데 재미있어 하는 걸 보니 영재는 영재인가 봅니다.”

부산 영재학교의 첫 신입생 선발시험의 최종 3단계 출제위원장을 맡은 KAIST 물리학과 김수용 교수는 “정답이 없거나 여러 개 있는 문제에 학생들이 어떻게 창의적으로 접근하는지 보고 싶었다”고 출제 의도를 밝혔다.

실제로 시험문제는 10여명의 관련 전공 교수들이 사흘 간 합숙을 하며 고심해 만들었다. 김 교수는 “어느 경시학원에서도 이런 문제를 가르쳐줄 수는 없다. 대치동 엄마들의 극성으로도 자식을 영재로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80년대 후반부터 물리올림피아드 대표단을 이끄는 등 영재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결국 과학분야 영재는 어려서부터 과학 책을 많이 읽고 뜻을 이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문제만 읽으면 답을 아는 수능시험식으로는 한국 교육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44명의 영재학교 학생 중 3분의 1만 건져도 성공이다. 한국 과학이 10년 이상 발전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한 과목에 9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문제를 푼 학생들은 과학자의 기본 덕목이 끈기와 성실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합격점 이상”이라고 평가했다.

■외국 영재학교 우리보다 20년 앞서

해외의 영재학교는 우리보다 최고 20년 앞서 개설됐다. 우리는 그만큼 뒤처진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과학영재학교 일리노이 수학 과학고등학교는 1985년 공립학교로 설립됐다. 8학년(한국의 중학교 2학년)부터 지원이 가능하고 재학생은 3개학년에 모두 650명. 이곳에서는 기숙사생활을 하며 수학 과학분야를 중심으로 심화학습이 이뤄진다는 점이 부산 과학영재학교와 비슷하다.

그러나 매주 수요일은 자체탐구활동, 학생연구활동 등을 한다는 점은 미국식 자유교육의 특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미국의 주요 대학 부설 영재센터는 주로 방학기간에 집중교육을 시키고 있다. 미국 퍼듀대 영재교육연구소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3까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여름방학 2주코스이다.

여름방학마다 영재들을 꾸준히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과 논술시험, 수학 등의 분야를 평가, 영재를 선발한다. 예일대와 조지아대도 부설 영재연구소를 설립, 나이가 들면서 영재성이 사라져가는 현상을 해결하는 문제와 창의성 테스트법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영재교육도 빼놓을 수 없다. 이스라엘 예술ㆍ과학 고등학교는 1990년 설립돼 대학교수 박사급 연구원 등이 시간강사로 참여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곳 특징은 전문가들이 수행평가를 중심으로 관찰, 37개 지역별로 과학 영재학생을 선발한다는 점이다. 러시아도 모스크바 국립과학고 등 영재학교를 만들어 특별 관리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각 시도에 16개 영재교육센터가 있지만 아직 초보단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학교육 전문가들은 “부산 과학영재학교는 영재학교를 표방하며 출발했던 과학고가 입시기관으로 전락한 전철을 절대로 밟아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과학영재학교

과학영재학교 신입생은 3단계 선발과정을 거쳐 9월6일 최조합격자를 발표할 계획이다.지난 6월20일 144명 정원에 1,192명이 지원,평균 8.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는데 지원자들은 1차 서류전형 2차 과학수학능력시험을 거친 뒤 최종 3단계 시험을 치렀다.합격자들은 내년 3월부터 과학 영재학교로 전환되는 부산과학고에서 생활하게 된다.이들은 일반,전공교과 등 졸업에 필요한 최소 145학점을 이수하면 졸업자격을 갖는다.수학과 과학교과가 전체 수업의 70%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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