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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기/ "저희 남편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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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기/ "저희 남편께서는..."

입력
2002.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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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오현경이 결혼을 한단다. 한때 제 이름을 잃고 O양으로 불렸던 그녀. 몇 년 전 일시 귀국해서 “대한민국 어느 남자가 저와 결혼하려 하겠어요”라고 반문하던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팠는데 드디어 그 긴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와 새 삶을 시작한단다.그녀의 아픔마저 껴안기로 한 남자는 한 TV드라마의 모델이기도 한 꽤 유명한 청년사업가라고 한다. 그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한 남자로서 내린 어려운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도하 각 스포츠신문들은 두 사람의 인터뷰를 앞다투어 싣고 있다.

그런데 기사를 읽다 보니 한가지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오현경이 미래의 남편을 꼬박꼬박 ‘회장님’이라고 부르며 극존칭을 쓰고 있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회장님이 곁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으며…, 워낙 이해심이 많은 분이고…” “회장님이 지금 살고 계시는 서울 한남동집에서 살게 될 것…, 무섭게 일을 하시는 분…” “회장님은 딸이 좋다고 하시며…, 회장님은 그때마다 ‘잘 살자’는 말씀을 하신다.”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모양이라고 접어주면 그만이지만 남들 앞에서 남편을 지나치게 높이는 우리나라 일부 주부들의 고질병이 떠올라 씁쓸하기만 하다.

‘나의 한국어 바로쓰기 노트’의 저자인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회장에 의하면 우리 말에서는 자기 남편이나 아내를 연장자 앞에서 낮춰 부르는 것이 원칙이다. 시부모앞에서 ‘애비가…’ ‘에미가…’ 하는 것이 좋은 예다.

불특정다수의 독자나 시청자중에는 연장자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자기 배우자에 대한 존칭은 안 하는 것이 예의다. TV를 보다 보면, 그러나 이 간단한 원칙은 참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20년 넘게 PD로 일하며 아침방송 주부프로를 오래 맡아온 친구 말로는 방송 시작 전에 출연 주부들에게 이 부분을 몇 번이고 강조해 주의를 주곤 한단다.

“그런데 말이지, 일단 방송이 시작되면 아무 소용없어. 그렇게 맹세를 하고도 여전히 ‘하셨구요, 좋아하시구요’하며 남편 존칭을 시작하는 거야. 정말 이제는 포기해야 하나 싶기도 해.”

남편을 찾는 전화에다 ‘지금 샤워중인데요’ ‘아직 안 들어왔습니다’ 식으로 말해왔다. 이제는 슬슬 나만 홀로 못된 아내취급 받는 건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언어는 동시대인들끼리의 약속이며, 동시에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그 시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어투가 바로 정답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러다 “저희 남편께서는 저를 무척 사랑해 주신답니다”가 올바른 우리말로 자리잡는 건 아닌지. 오현경씨,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요. 그런데 남앞에선 자기 남편을 살짝 낮추는 것이 예의랍니다.

/ 이덕규ㆍ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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