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는 애초에 음악이 많은 영화였다. 이창동 감독은 7번의 환타지 장면을 포함해 최소한 9곡이 있어야 한다며 이재진(31) 음악감독에게 작품을 부탁했다.하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감독의 생각은 바뀌었다. 메인과 엔딩 타이틀을 제외하고 음악을 쓰지 않기로 했다. “멜로 드라마는 멜로디에서 나온 장르이므로 굳이 음악이 많이 필요치 않다”는 것.
반면 비현실적(판타지) 장면에만 음악을 넣어야 한다는 ‘박하사탕’ 이래의 원칙을 저버리고 지하철 장면에는 노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재진 감독은 이번에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영화음악은 감독의 뜻에 따라 영화를 서포트하는 기능적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노래는 여주인공 문소리에게 연기지도를 한 장애인이 가장 좋아하는 안치환의 ‘내가 만일’로 정했다. 반주없이 담담하게 부른 노래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격인 장면에서 기대 이상의 느낌을 냈다.
그 느낌이 좋아 오케스트라 반주를 입혀 사운드트랙 음반 첫 머리에 넣었다. 음반의 3번째 곡부터 11번째 곡까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 극중 환타지를 주제로 만든 곡들이다.
“영화음악은 영화를 본 사람들이 영화를 회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재진 감독의 생각은 많지 않은 작품 수에 비해 영화계에서 그의 주가를 높이고 있는 주된 이유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으로 미국 보스톤 음대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한 그는 ‘박하사탕’으로 데뷔해 ‘파이란’의 음악을 맡았다.
‘박하사탕’의 기차 신이나 ‘파이란’의 편지 신에 흐르던 그의 음악은 현실과 비현실을 가르고, 신파가 아닌 절제된 슬픔을 전달하는데 탁월했다는 평을 받았다. “음악감독은 스태프의 한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촬영장을 따라 다니고 감독, 배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음악을 만든 결과다.
세번째 작품 ‘오아시스’도 전작들처럼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디에 음악이 들어가야 하는지 감이 와서” 골랐다. 하지만 음악감독에게 일임하는 송해성 감독과는 달리 작은 것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챙기는 이창동 감독과의 재작업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민병천 감독의 SF물 ‘내추럴 시티’와 정지우 감독의 호러물 ‘두 사람’의 음악도 맡았다. 공교롭게도 ‘박하사탕’ ‘파이란’에 이어 감독의 두번째 작품들이다.
영화음악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제작시스템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볼 생각으로 경희대 연극영화과에서 강의를 하고, 싱어송 라이터의 꿈을 접지 못해 프로젝트 음반도 준비중이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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