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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기자의 컷]꿈도 사랑도 이율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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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기자의 컷]꿈도 사랑도 이율배반

입력
2002.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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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수가 흐르고, 물레방아 앞에 수줍은 듯 서있는 여자와 남자, 옆에는 순록이나 사슴 한 마리쯤 있으면 금상첨화. ‘이발소 그림’은 이상향의 요약판이다.바람직한 자연, 아직 수줍음이 남은 연인. 폭포 근처에 물레방아가 있으니 말이 안되고, 게다가 순록이나 사슴은 더욱 넌센스지만 어디 인간의 꿈이 논리적인가.

‘이발소 그림’을 가장 잘 계승한 것 중 하나가 스킬 자수다. 굵은 털실을 정방형 그물 판을 촘촘히 채우는 스킬 자수는 대나무 밭에 노니는 팬더 곰도 있지만,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나 예의 이상향을 지향한 그림이 많다.

‘오아시스’의 공주(문소리)의 방에 걸린 것 역시 그렇다. 청소부였던 아버지가 방에만 틀어 박혀 있는 딸을 위해 어딘가에 버려진 스킬 자수를 주워왔을(이창동 감독의 설명) 자수에는 ‘OASIS’라는 글자 위에 사막 위의 코끼리, 물동이를 인 여자, 그리고 (그 더운 사막에 뜬금없이 나타난) 소년이 피리를 불며 서있다.

꿈이란 현실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이율배반적이다. 공주가 종두를 휠체어에 앉혀 놓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많은 관객이 꼽는 ‘찡한 장면’)에 나오는 안치환의 노래 ‘내가 만일’은 이율배반의 절정이다.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공주는 ‘내가 만일 장애가 없다면’이라고 노래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주는 ‘같이 자자’는 결정적인 말도 ‘가가 같이 자자 자요’라고 더듬는다. 공주의 ‘내가 만일’은 자기 부정의 노래다. 꿈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지금의 존재를 부정한다.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데, 그 사랑을 받는 나는 존재가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적어도 ‘오아시스’는 사랑을 할수록 자기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못난이 우리’의 사랑에 관한 얘기다.

‘이작품은 순수 멜로’라는 감독의 말은 사랑을 할 때 자신이 한없이 작아보이는 사람들에겐 적절한 설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받는 나 자신이 한없이 잘 나 보인다면? 에리히 프롬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는 사랑을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창동 감독은 그냥 씩 (비)웃지 않을까.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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