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물난리가 전국을 휩쓸고 갔다. 중부권에서 시작된 이번 물난리는 결국 경남지방의 재해지역 선포로까지 이어졌다.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것은 이번도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사실이다. 전국 곳곳에 넘쳐 나는 물로 고통받는 수재민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결코 물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관리 바보국가라는 생각을 해본다.스웨덴의 물 전문가 폴켄마르크는 한 사람이 일년 동안 소비하는 식량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약 1,100톤)과 생활용수를 고려하여 연간 1인당 가용수량이 1,000톤 이하를 물기근 국가로, 1,700톤 이하를 물부족 국가로 분류하였다. 유엔은1993년 이 기준에 따라 18개 국가를 물기근 국가, 9개 국가를 물부족 국가로 분류하였다.
물부족 국가에 포함된 우리나라는 나머지 26개 국가와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 국가들의 대부분은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에 위치하여 원래 강우가 부족한 사막국가인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물난리를 겪을 만큼 강우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장마철에는 물이 넘쳐 난리를 겪고 가뭄에는 물 한 방울이 아쉬운 세계 유일의 ‘이상한’ 물부족 국가가 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이상한 물부족 국가가 된 것은 기후와 지형 때문이다. 건조한 대륙성 기류와 습한 해양성 기류가 교차하는 한반도에서 극심한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우리 역사에서 가뭄과 홍수로 인한 재해는 다반사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선 1442년에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는 자연호가 전무하기 때문에 장마에 집중되는 비를 모아둘 물그릇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인공호를 만들었지만, 만든 물그릇(다목적 댐과 생공용수 댐, 하구 댐)을 모두 합해도 130억톤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와 기후조건이 비슷한 이웃 나라들은 사정이 다르다. 일본열도가 만들어질 때 형성된 자연호인 비와호 하나의 용량이 275억톤이며 중국의 동정호도 178억톤이나된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열악한 기후와 지형에도 불구하고 관개농업과 고도의 산업화, 그리고 높은 인구밀도로 인하여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물부족 현상은 이미 우리 생활과 산업 곳곳에서 나타나고, 갈수기에는 하천에 물이 부족하여 수질이 악화되고 생태계 피해가 매우 크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온 천하가 물이요, 넘치는 물로 너무나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 기온이 급상승하는가 하면 집중 폭우와 극심한 가뭄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전세계 11억명이 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으며 매년 수 백만명이 죽어가고 있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에는 100년만의 가뭄이 오더니, 올해는 마른 장마라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 후 열흘만에 일년 강우량의 반이 내렸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가뭄과 홍수의 나라요, 태생적인 물그릇 부족국가이다. 여기에 기후변화까지 겹치니 물난리와 물부족은 국가 발전과 국민의 생존을 크게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집중 폭우가 내년에는 어디에 내릴지, 지난해와 같은 극심한 가뭄이 언제 다시 올지 불안해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물관리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홍수가 나면 제방이나 쌓고 가뭄이 오면 양수기로 이곳 저곳에서 지하수나 뽑아 쓰고 있다. 그 결과 매년 수 천억원에서 1조원을 넘는 피해를 겪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다. 보다 강력한 물관리 대책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물이 넘칠 때 모아두었다 부족할 때 방류할 수 있는 물그릇을 만들고, 급수와 배수가 원활하도록 하천과 수로를 정비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경험한 집중 폭우와 극심한 가뭄에서도 견딜 수 있는 물관리 대책이 국토의 모든 수계에 마련돼야 한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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