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파시즘론’은 공허한 도덕적 근본주의다.”계간지 ‘사회비평’ 주간인 김진석(金鎭奭ㆍ44) 인하대 철학과 교수가 우리사회 곳곳에 스며든 폭력에 주목하는 이른바 ‘폭력담론’ 논객들에게 칼을 빼들었다.비판의 대상은 문부식(文富軾ㆍ43) ‘당대비평’ 편집위원과 임지현(林志弦ㆍ43) 한양대 사학과 교수, 러시아 출신 귀화인 박노자(朴露子ㆍ29) 오슬로국립대 교수.
김 교수는 22일 발간되는 ‘사회비평’ 가을호에 실린 ‘위험한 근본주의에 빠진 일상적 파시즘론과 비폭력주의’란 글에서 이들의 주장을 ‘도덕적 근본주의’라고 규정하고 그 안에 깃든 역설적 폭력성을 질타했다.
문부식-내면적 성찰과 사회적 성찰의 혼동
1982년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의 주역인 문씨는 최근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경찰관 7명의 죽음을 부른 87년 ‘동의대 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것을 정면 비판했다.
김 교수는 “‘동의대 관련자들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으려면 먼저 불행한 결과에 책임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문씨의 주장은 폭력적 권력에도 절대 평화적 방법으로만 저항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면서 “모든 민주화운동을 미화할 필요는 없지만 폭력을 동반한 어떤 운동도 민주화운동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문씨의 문제제기 방식에 이의를 단다.
그는 “자신의 폭력적 저항 방식을 종교적, 문학적으로 성찰할 수는 있지만 그런 내면적 성찰은 무수한 개인과 집단이 복잡한 갈등관계에 있는 사회과정에 대한 분석과 성찰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면서 “문씨는 이를 구분하지 않은 채 사회적 성찰의 자리에 내면적 성찰을 떡 앉혀놓고 이를 보편화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문씨가 “극우세력의 강력한 대변자”인 모 언론을 통해 동의대 사건을 첫 언급한 것과 관련, “일상적 파시즘의 근절을 주장하면서 정작 현실 속의 거대한 권력집단인 그 언론에 대해서는 아무런 경계경보도 발령하지 않은 채 (민주화운동을 매도하는) 그 언론에 자발적으로 협력한 것은 이중적 태도”라고 비난했다.
임지현-공허한, 그리고 위험한 근본주의
임 교수는 2년 전 펴낸 저서 ‘우리 안의 파시즘’과 ‘당대비평’에 발표한 글 등에서 “일상의 모든 구석에 침투해있는 권력과 파시즘으로부터 전면 해방돼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김 교수는 “그가 말하는 해방은 억압을 도처에 설정한 후에 얻어지는, 결코 오지 않고 올 수도 없는 공허한 유토피아”라면서 “이는 정치적 실천의 이름을 빌린 ‘종교적 근본주의’에 가깝고 이론적으론 근사하지만 실천적으로는 기만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임 교수가 주민등록 날인제도에 대한 순응을 일상적 파시즘의 일례로 든 것에 대해 “대중들이 왜 그렇게 이중적이고 애매한 태도를 갖게 됐는가를 분석하지 않은 채 ‘권력’과 ‘파시즘’이란 말을 맹목적으로 일반화함으로써 스스로 파시즘적 성향을 드러냈다”고 반박했다.
김 교수는 “폭력의 사회적 책임을 묻자면 정치ㆍ경제ㆍ문화적 거대 권력, 그리고 지식인집단 같은 기득권자들에게 먼저 주목해야 하며, 다양한 대중문화적 폭력을 즐기는 서민들은 그 다음 차례”라면서 “약자의 폭력을 무턱대고 합리화할 수는 없지만 강자의 폭력 남용을 제쳐두고 약자를 더 비난하는 일은 기득권의 질서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노자-또 다른 근본주의적 비폭력주의
김 교수는 “박씨는 문부식_임지현류와 매우 다르지만 ‘도덕적 근본주의’라는 측면에서 비판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박씨는 한국 사회의 전근대적 관행과 폭력적 군사문화를 비판하면서 왜, 어떻게 그런 폭력성이 발생했는가에 대한 애정어린 이해가 부족한 채 서구적 근대성의 기준을 무리하게 적용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일례로 한국 남성들이 폭력적 군대문화에 익숙하고 양심적 입대거부자가 없다는 그의 개탄에 대해 “젊은이들이 폭력을 좋아하거나 그 위험을 몰라서 군대를 가는 것은 아니며 입대를 거부할 충분한 자유도 없다”면서 “대외 식민지배를 통해 대내적 민주화를 경험한 서구의 반전주의 잣대로 이들을 비난하는 것은 서구중심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박 교수가 구소련의 대학생 병역면제 덕을 본 점을 들어 “폭력적 사회에서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는 특권 집단에 속해야 한다는 무서운 진리가 확인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박씨의 지적처럼 사회화하고 제도화한 폭력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엄숙주의 관점에서 그것을 송두리째 거부하는 몸짓은 종교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지만 현실 사회에 대한 분석으로는 부적합하며 그 점을 혼동할 때 이론적 독단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면서 우리 사회의 폭력성 비판에 좀 더 신중할 것을 주문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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