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위기의 동대문 시장

알림

위기의 동대문 시장

입력
2002.08.22 00:00
0 0

‘패션과 유통의 메카’ 동대문시장이 급격히 쇠락하고 있다. 대형 쇼핑몰 난립에 따른 과당경쟁, 할인점 등 신종업태의 부상, 저가 중국제품의 가격공세, 고급 디자인 인력 유출 등 원인은 다양하게 지적되지만 누구도 옛 명성을 되찾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동대문시장은 샘플시장?

21일 동대문 M상가 여성복 매장. 가을 정장용 블라우스와 니트 등을 종류별로 몇 벌씩 구입한 30대의 중국 바이어는 서둘러 인근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국에서 복제 생산할 샘플용 의류를 사모으기 위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4, 5년 전처럼 의류 완제품을 판매용으로 대량 구매하는 외국 상인은 찾기 힘들다”며 “특히 중국인들이 사 간 제품은 불과 일주일 내에 자국 시장에 나오고, 디자인을 다소 변형시킨 제품 상당량은 국내로 역수출된다”고 푸념했다.

㈜밀리오레 유종환(柳宗煥) 사장은 “국산 청바지 한 벌 생산원가가 약 2만원이지만 중국에서는 4,000원”이라며 “국내 시장에 유통되는 데님, 니트 등 유행에 덜 민감한 베이직 의류의 90% 가량이 중국산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일부 대형 쇼핑몰의 경우 제조 상인은 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사입상인(제품을 구입 또는 수입해서 되파는 상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때 디자인과 생산 경쟁력을 갖췄던 상인들이 중국서 생산을 아웃소싱하는 중ㆍ저가 브랜드의류와 값싼 중국산 비브랜드 의류, 할인점 홈쇼핑 온라인몰 아울렛 등에 밀려 동대문을 떠났다는 뜻이다. 실제로 신평화 등 구 도매상권과 아트플라자 디자이너클럽 등 신 도매상권은 지방 경기의 침체까지 겹쳐 동대문시장 탄생 이후 가장 높은 10%대의 공실률을 기록하고 있다.

■규모 커지고 경쟁력은 쳐지고

1980년대 후반 1만개 남짓이었던 동대문 일대 도소매 의류점포 수는 89년 최초의 대형 패션쇼핑몰 ‘밀리오레’ 탄생을 기점으로 우후죽순처럼 늘어 현재 100여개의 중ㆍ소형 상가2만여개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헬로우APM이 오픈하는 것을 비롯, 굿모닝시티와 라모도 등 대형 상가도 분양을 서두르고 있어 조만간 7,000~1만개 매장이 추가될 전망이다. 해양엘리시움 양홍섭(楊鴻燮) 전무는 “쇼핑 인프라의 보완ㆍ개선 없이 신규분양 물량만 늘고 있어 소매상가의 공실 사태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봉제 생산라인의 붕괴도 심각하다. 동대문시장 포털사이트인 동대문닷컴 신용남 사장은 “대규모 생산라인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고, 가내공업 형태의 영세업체만 일부 유지되고 있다”며 “인력 노후화도 심각해 40대 이하 기능인력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생산라인 붕괴는 동대문시장의 핵심 경쟁력인 ‘다품목 소량 신속생산’ 기반의 와해로 이어져 해외 바이어, 특히 단기 납품수요가 큰 일본 유통업체들의 주문 격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무역협회 외국인 구매안내소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달 말까지 일본 바이어에 대한 동대문시장 구매지원 건수는 54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273건보다 무려 57%가 격감했고, 중국인 상담지원 역시 71건으로 지난해(105건)보다 32.4% 줄었다. 무협 고동철(高東澈) 소장은 “일본 경기 침체와 동대문시장의 경쟁력 약화가 수출상담 격감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동대문 회생’ 고민해야

정부는 2000년 초 동대문시장에 총 1,757억원을 들여 전자상거래 인프라를 구축, 첨단 수출기지로 육성하겠다는 ‘동대문ㆍ남대문 네트워크화(nDN)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거래 투명화와 세부담을 우려한 상인들의 열의 부족과 정부의 담보 요구 등에 막혀 결국 유야무야됐다.

최근엔 이명박 서울시장이 동대문 일대의 주차요금을 대폭 올리겠다는 교통대책을 발표, 동대문 시장 문제에 대한 이해부족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클라이드‘‘지피지기’‘옹골진’‘잠뱅이’ 등 토종 유명브랜드의 80%가 동대문시장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동대문 시장 한 관계자는 “60,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원단을 구하지 못해 상가의 70%가 문을 닫은 적도 있었지만 동대문은 건재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정부와 서울시, 상인이 동대문시장의 역할과 정체성 등 근원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