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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못봐줘" 시청자 운동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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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 못봐줘" 시청자 운동 폭발

입력
2002.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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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단체가 방송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예전처럼 프로그램 모니터 보고서 작성 수준이 아니다. 특정 프로그램의 폐지를 촉구하는 1인 시위와 공개서한 발송, 연예계 풍토 개선을 위한 시민토론회와 서명운동 등 전방위적이며 공격적이다.여기에 네티즌까지 가세, 시청자운동은 1993년 ‘TV 끄기 운동’ 이후 정점에 이르렀다. 시청자운동의 현주소와 개선점을 취재했다.

* 비리PD 명단 제보 연예계 수사 촉발

1월 말 A4용지 한 장 분량의 제보가 서울지검에 접수됐다. 연예기획사에서 돈을 받은 방송사PD 명단이 적힌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문화연대)의 제보였다.

PR비 비리, 주식로비 의혹, 조폭자금 유입, 성 상납, 마약 투약 등 2개월 여 동안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연예계 비리’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시청자운동이 2002년 한국 방송계를 강타하고 있다. 한 시청자단체의 제보로 시작된 연예계 비리 사건을 비롯해 시청자단체가 폐지운동을 벌인 특정 프로그램이 결국 폐지되는 등 시청자 파워가 거세다.

연예계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가요순위 프로그램 역시 시청자단체로부터 폐지 압력을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통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방송방식의 변경까지 요구하고 있다.

* 특정프로 폐지운동 디지털방식 변경요구

요즘 시청자운동의 특징과 파워를 잘 보여준 사례는 KBS 2TV ‘서세원 쇼’ 폐지 운동.

문화연대, 대중음악개혁을위한연대모임(대개련), 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 등 8개 시청자단체는 6, 7월 최악의 프로그램으로 ‘서세원 쇼’를 연이어 선정한 뒤, 프로그램 폐지를 위한 거의 모든 수단을 활용했다.

공개서한 발송, KBS 앞 1인 시위, 온라인 서명 운동 등등. KBS는 “서세원씨의 개인 사정 때문이지 시청자단체의 요구 때문에 폐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결국 ‘서세원 쇼’는 폐지됐다.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도 시청자운동의 늘어난 역량을 잘 보여주는 사례. 대개련이 7월 연예계 비리 근절을 위한 개혁의 한 방법으로 MBC ‘음악캠프’와 SBS ‘인기가요’ 등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폐지를 요구한 이래 구체적인 자료에 근거한 폐지운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방송사별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수와 출연 횟수, 소속 기획사를 입체적으로 분석,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 점은 시청자운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청자운동의 관심분야도 넓어졌다. 전문성 결여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 동안 소홀했던 방송기술 분야까지 아우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정보통신부가 1997년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방송 방식으로 미국식(ATSC) 방식을 채택한 것에 대해 분명한 반대입장을 표명한 것.

문화연대, 매체비평우리스스로, 한국여성민우회 등 32개 시청자ㆍ시민 단체는 21일 디지털 방송의 미국식 방송방식 결정 백지화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ATSC 방식이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사용되고 있고 ▦방송 주파수 자원 관리상 비효율성이 드러났으며 ▦결정 과정의 정당성과 민주성이 결여됐다는 점을 들어 결정 철회를 전면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32개 단체에는 방송사 노조까지 참여해 눈길을 끈다.

김태현 경실련 미디어워치 부장은 “요즘 시청자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공동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단체간 연대를 이루는 것”이라며 “보다 효율적인 시청자운동을 위해서는 사회학, 방송기술 등 각계 전문가의 대거 참여, 방송산업 종사자와의 적극적인 교류, 지속적인 시청자운동을 위한 광범위한 시민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비민주적 이상주의" 방송사 곱지않은 시선도

그러나 이 같은 시청자 운동을 바라보는 방송사의 시각은 상당히 비판적이다. 특히 10대가 주를 이루는 네티즌들의 인신공격성 발언과 이를 근거로 특정 프로그램의 폐지를 요구하는 시스템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또한 방송 제작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원론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접근으로 일관한다는 비판도 있다.

SBS 예능국의 한 관계자는 “연예계 비리 근절을 위한 외주제작 활성화, 가요순위 산정 시 시청자단체 참여 등 그들이 내놓는 대안은 한마디로 현실성이 없다”며 “특히 요즘 시청자 단체는 오히려 기성세대의 시각에 사로잡혀 10대들의 다양한 문화 특징을 반영한 프로그램을 무조건 반대하는 경향마저 있다”고 말했다.

KBS 예능국 PD는 “프로그램 존폐는 시장법칙에 맡겨야 한다. 과거 30%가 넘던 가요순위 프로그램 시청률이 이제는 많이 떨어져 주시청시간대에 편성조차 되지 않고 있다.

방송에서도 엄연한 문화시장의 논리가 적용되고 있는데 외부에서 특정 프로그램과 장르를 아예 폐지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민주적이며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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