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는 건 높은 분들의 위로방문이 아닙니다. 실질적인 지원대책이라는 걸 왜 모릅니까.”수해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경남 김해시 한림면 일대 주민들의 심정은 하늘에 대한 원망에서 정치권과 당국에 대한 분노로 바뀌어 있다.
침수 12일이 지난 21일까지도 집에 돌아가지 못한 김해의 이재민이 800여 가구 3,000여명에 이르고 한림면 장방리는 3분의2 이상이 여전히 물 속에 잠겨있다. 지금껏 햇볕을 보지 못한 수천㏊ 옥답의 올해 수확은 이미 끝이 났고 수만마리의 소ㆍ 돼지들도 땅에 묻혔다. 게다가 수해 뒤끝의 피부병, 눈병 등 온갖 질병으로 주민들의 심신은 지칠대로 지쳐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줄지어 찾아오는 정치인 등의 발길은 위로가 되기는 커녕 주민들의 심사를 더욱 뒤틀리게 만들고 있다. 번거로움 보다도 이들의 무성의한 태도 때문이다. 대부분은 멀찌감치 마른 땅에서 브리핑을 듣고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뒤 훌쩍 떠나버린다. 주민들은 그리고 나서 나온 대책이 고작 ‘재해극심지역’ 지정 하나라는 데 극도로 분노하고 있다.
마을의 한 유지는 “이번 수해는 부실한 둑 공사 등으로 인한 명백한 ‘인재(人災)’이기 때문에 재난관리법을 적용 받는 ‘특별재난지역’ 지정이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연재해대책법상의 ‘재해극심지역’은 지원규모 자체도 턱없이 적은데다 상당부분은 주민이 직접 부담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참다 못한 수재민들은 손에 복구장비 대신 피켓을 들었고 19일에는 40대 가장이 절망해 자살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물론 흥분상태에 빠져있는 주민들의 요구를 전부 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재난 때마다 민심과 겉도는 정치인 등의 행태를 반복해 봐야하는 일은 정말 괴롭다.
이동렬 사회부기자 dy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