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재 외국공관에 진입하여 남한행을 요구하는 탈북자 문제가 빈발하여 전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해상으로 21명의 집단 탈북 사태가 일어나서 또 한번 흔들리고 있는 북한의 실상을 실감하게 하고 있다.탈북자가 발생하는 배경은 크게 보면 북한의 식량난 때문이지만, 북한에서 밀어내는 요인과 외부에서 끌어당기는 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북한에서 밀어내는 요인은 북한 내부에서 먹고 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식량을 찾아서 중국 등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외부에서 끌어당기는 요인으로는 먼저 중국에 나온 사람들이 북한으로 들어가서 중국과 남한에 대한 정보를 흘려주어서 유인해 내는 효과가 있으며, 또 남한에 먼저 온 탈북자들이 북에 남아 있는 가족을 데리고 나오기도 한다.
북한에서 중국에 나와 있는 탈북자 수는 평가 주체에 따라서 엇갈리지만 일반적으로 20만 내지 30만명이 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그 숫자가 크게 증가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남한으로 오는 탈북자 수는 해마다 두 배씩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고, 최근의 추세대로라면 금년에만 1,200명이 입국할 것으로 보인다. 그 까닭은 중국에 체류한 탈북자들이 더 이상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금년 들어서 기획탈북 사태 이후 중국의 탈북자에 대한 단속과 강제 송환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몸을 피해서 남한으로 오게 된 것이다.
탈북 행렬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 까닭은 북한의 경제 회생 가능성이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 생활의 제도적 여건이 지난달 경제관리 개선 조치로 말미암아 매우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제관리 개선 조치의 핵심 내용은 임금수준을 수십 배 올리기는 했으나 그 대신 국영상점의 생필품가격을 임금수준 상승률에 맞게 대폭 올리는 등 그 동안 거의 무상이나 마찬가지인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던 사회주의적 사회보장제도를 폐지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제는 집세, 교통비, 탁아소 교육비 등 생활비를 암시장 가격 수준으로 대폭 인상한 것이다. 이 조치의 배경은 그 동안 사회주의적 계획경제 체제 하에서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소극적이고 무사안일 한 태도를 일삼아온 주민들을 천리마운동이니, 주체사상이니, 속도전이니 하는 온갖 구호와 이데올로기로 노력동원에 박차를 가해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한 만큼 현금임금을 주고 시장가격으로 생필품을 구매하도록 한 것이다. 즉 지금까지 공짜로 제공하던 재화와 서비스를 모두 폐지하고 유료화한다는 것이다. 생활여건이 악화하면 할수록 탈북 행렬은 더 길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모든 북한 주민들이 다 탈북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발생한 21명의 탈북 사건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들이 있다.
순종식씨 일가족 중에는 당간부 출신인 둘째와 셋째 며느리가 있었는데 이들에게는 탈북 계획을 알리지도 않았고 탈북 대열에 합류시키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며, 또 하나는 타고 온 배에 당직을 서던 기관장 리경성씨는 탈북 의사가 없을 것으로 판단해 기관실에 감금한 채 데리고 왔다. 기관장 리씨는 남한에 온 뒤에 황당해 하며 “나는 북에 처자식이 있다”는 말을 뒤풀이 했다고 한다. 식량난 속에서도 북한에 눌러앉아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탈북자들은 주로 당원이 아닌 사람, 남한에 친척이 있는 사람, 조상 가운데 성분이 나쁜 사람이 있는 경우로서 북한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어 잘 살 수 있는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다. 탈북을 꿈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제난 속에서도 자신들의 체제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대북 정책의 차원에서 탈북자 문제의 해법을 찾을 때 북한 주민들이 이렇듯 나뉘어져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사회인권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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