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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강천산/뾰족뾰족 바위산에 등산길이 아기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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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강천산/뾰족뾰족 바위산에 등산길이 아기자기

입력
2002.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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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가 몹시 내렸는데도 ‘참 맑다.’ 강천산(603mㆍ전북 순창군) 산행은 등산로 입구의 투명한 계곡물에 대한 감탄으로 시작됐다. 흐르는 물의 양은 크게 불은 것 같은데 색깔은 머리 속이 시원할 정도로 선명하다. 흙산이 아닌 바위산이라 그럴 것이다.산 입구에 등산 안내도가 걸려 있다. 복잡하다. 기본적인 등산 코스만 5가지. 연계된 길 없이 제각각이라 어떤 코스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등산로가 많이 개발됐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의미이다. 강천산은 바위 봉우리 마을이다.

최고봉인 산성산을 중심으로 신선봉, 광덕산, 시루봉, 형제봉, 왕자봉, 깃대봉 등 크고 작은 봉우리가 도열해 있다. 각 봉우리와 골짜기를 따라 섬세하게 산길이 나 있다.

서울의 북한산을 연상케 한다. 강천산은 1981년 1월 전국 최초로 군립공원이 됐다. 이후 20년이 넘도록 호남 지역의 인기 산행지였다. 등산로의 복잡함을 이해할 만 하다.

고민 끝에 몇 가지 명소가 있는 코스를 임의로 생각했다. 신선봉에 올랐다가 산 속 호수를 보고 비룡폭포를 구경하는 일정이다. 시작은 가볍다. 그냥 평지이다. 옆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에 눈길을 준다. 약 20분을 걸으면 강천사이다.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년)에 세워진 고찰로 산 이름은 이 절에서 비롯됐다. 고려 태조 왕건에게 큰 가르침을 준 도선국사가 세웠다. 절은 얄미울 정도로 작다. 그러나 정갈하고 기품이 넘친다. 경내에 들어서면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이다. ‘무릇 절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강천사를 지나 약 5분 정도 걸으면 강천산의 제 1명물과 만난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붉은 현수교이다. 군립공원이 될 때 지어졌으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계곡 양쪽에 굵은 기둥을 설치하고 쇠다리를 쇠줄로 이어놓았다.

폭은 1m로 좁지만 길이는 70m가 넘는다. 산에 걸쳐진 현수교 중 국내에서 가장 길다. 약간의 각오가 필요하다. 별 생각 없이 들어섰다가는 오금이 저리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높이 보다는 길이 때문이다. 꽤 오랜 시간 걸어야 한다.

현수교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신선봉에 오르는 길이다. 거의 길이 아니다. 바위 능선에 쇠난간을 대고 강제로 등산로를 만들었다. 가파르다. 산길은 온통 뾰족돌 투성이이다. 죽순처럼 솟아있다.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다면 완벽한 ‘똥침’이다. 난간을 부여잡고 헉헉거리며 오르기를 약 30분. 신선봉이다. 신선봉에는 2층 누각 형태의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전망대에 서면 왼쪽으로는 붉은 현수교가 오른쪽으로는 고즈넉한 강천사의 절집들이 보인다. 서늘한 산바람에 땀을 식힌다.

다시 현수교로 내려와 제2 강천호로 향하는 길을 택한다. 길은 넓다. 산 중턱에 댐을 건설하려고 차가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계곡물을 여러 차례 가로지른다. 징검다리가 놓여있다. 한 걸음 먼저 건넌 남자가 따라 오는 여자의 손을 잡아 준다. 정겹다.

호수로 가는 길은 공사 중이어서 마지막 구간은 잠시 폐쇄됐다. 옆으로 계곡을 타고 오르는 길이 나 있다. 비룡폭포를 거쳐 산성산에 오르는 길이다. 완전히 분위기가 바뀐다.

빽빽한 원시림의 숲이다. 마치 낮에서 밤으로 이동한 느낌이다. 두 사람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길의 폭도 좁아진다. 이 길도 작은 계곡물을 여러 차례 가로지른다. 물이 불어 징검다리가 잠겼다. 신발을 벗어야 한다.

약 20분 정도 올랐을까. 왼쪽으로 ‘비룡폭포’라는 이정표가 있다. 물소리가 먼저 들린다. 온통 이끼로 뒤덮인 좁은 길을 잠깐 오르면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정말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모습을 닮았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산길. 계곡을 따라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등산객이 아닌 일반 행락객이다. 아이들이 맑은 물에서 물놀이를 한다. 물에 풍덩 뛰어들지는 못하더라도 시원하게 탁족이나 하면서 땀을 식히는 것은 어떨까.

▼강천산 산행법

강천산에는 5가지의 주요 등산코스가 있다. 풍광과 분위기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최소한 5번을 가야 강천산을 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주말과 휴일, 특히 낮에는 행락객이 많이 몰린다. 등산을 주로 한다면 가급적 평일에, 주말이라면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해야 번잡함을 피할 수 있다.

제1코스는 가장 기본적인 코스. 매표소에서 강천사를 들러 현수교를 타고 신선봉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이다. 5.5㎞로 왕복 약 3시간이 걸린다.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시도하는 산행이다. 그러나 쉽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현수교에서 신선봉까지의 길이 가파르고 험하다. 등산화가 없다면 튼튼한 운동화라도 신어야 한다. 샌들이나 뾰족구두 차림이라면 포기할 것.

제2코스는 최고봉인 산성산에 올랐다가 북바위를 거쳐 비룡폭포 골짜기로 내려오는 것. 9.4㎞로 약 4시간이 걸린다. 원시림의 향기에 푹 취할 수 있는 코스이다. 높은 산에 세워진 산성을 보는 맛도 좋다. 냇물을 맨발로 건너야 하는 곳이 많다.

제3코스는 신선봉-광덕산-시루봉-북바위를 거쳐 비룡폭포길로 하산하는 길이다. 강천산의 남쪽 능선을 종주하는 셈이다. 11.6㎞로 약 5시간이 걸린다. 각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는 표고차가 심해 힘들다. 경험이 많지 않다면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감행하는 것이 좋다.

제4코스는 강천산의 북쪽 능선 종주 코스이다. 병풍바위-왕자봉-깃대봉-형제봉을 거쳐 제2강천호 상류 쪽으로 하산한다. 7.8㎞, 4시간 거리이다. 역시 바위 능선이 만만치 않다.

제5코스는 해발 415m의 옥호봉을 오르는 길. 가장 짧은 코스이다. 병풍바위-금강문-금강계곡을 거쳐 옥호봉에 올랐다가 주차장 쪽으로 하산한다. 3㎞로 약 3시간이 걸린다. 강천산관리사무소 (063)650-1533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태인IC에서 빠져 30번 국도를 탄다. 옥정호 등 길가의 풍광이 좋다. 회문리에서 27번 국도로 갈아타면 바로 순창읍에 닿는다. 시내에서 24번 국도로 우회전, 약 3㎞ 정도 달리면 오른쪽으로 강천산주유소가 보이고 옆으로 진입로가 나있다.

진입로의 가로수(낙우송)가 아름답다. 길눈이 어둡다면 호남고속도로와 이어진 88고속도로를 타고 순창IC에서 빠지면 된다. 서울에서 순창까지의 고속버스가 하루 6회 왕복한다. 순창읍에서 강천산까지는 군내버스 하루 13회, 직행버스가 하루 18회 왕복한다. 순창시외버스터미널(063)653-2186

▼쉴 곳

순창에는 대규모 숙박시설이 없다. 장급 여관이나 민박을 이용해야 한다. 강천산 인근에는 구룡파크장여관(063-652-6767), 강천각여관(652-9920) 등이 있다. 순창읍에는 여관이 많다. 금산여관(653-2735), 금수장여관(653-3960), 섬징장여관(653-0674), 영빈장여관(653-6060), 골드모텔(653-9969)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강천산 입구에 먹거리촌이 있는데 대부분의 식당에서 민박을 친다.

▼먹을 것

순창의 으뜸 먹거리는 뭐니뭐니해도 고추장. 기왕에 순창에 들렀다면 ‘진짜’ 순창고추장을 맛보거나 구입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고추장에 담근 각종 장아찌도 맛있다. 문옥례할머니고추장,(063-653-1819), 이기남할머니집(653-3429) 등이 유명하다.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653-8101)도 매력적이다. 고추장 외의 먹거리는 섬진강과 지류에서 나는 다슬기를 이용한 음식이다. 수제비, 칼국수 등이 있다. 순창 어디에서도 맛볼 수 있다.

■길에서 띄우는 편지

강천산은 사람의 손을 많이 탄 산입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입니다. 강천산 연봉 중 산성산이 있습니다.

전남 담양과 전북 순창의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산 위에 산성이 있어 이름이 산성산입니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이라고 하니 1,000년 이상의 세월을 산 위에서 버티고 있는 셈입니다. 그 옛날부터 강천산에는 사람이 붐볐을 것입니다.

산 아래에는 큰 호수가 있습니다. 강천호라고 합니다. 강물을 맊아 조성한 인공호입니다. 산 중턱에도 호수가 또 있습니다. 역시 인공호수로 제2강천호라고 부릅니다. 그림 같은 계곡을 댐으로 막아 물을 가뒀습니다. 사람의 자취는 또 있습니다. 계곡을 가로지른 현수교나 산꼭대기의 전망대, 현수교에서 전망대에 이르는 등산길 등 모두가 사람이 쇳덩어리와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정도만 이야기하면 대부분 상상(?)을 할 겁니다. ‘완전히 만신창이가 된 모양이구나.’ 그러나 정말 상상일 뿐입니다. 강천산은 건강했습니다. 군립공원으로 관리되면서 더 이상의 손질은 자제됐습니다. 야영이나 취사는 지정된 장소를 제외하고 엄격히 금지됐습니다.

관리만 잘 한다고 지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강천산을 찾는 사람의 대부분은 계곡 물놀이를 즐기는 행락객입니다. 광주를 비롯한 인근 지역 사람들이죠. 그들이 즐기고 간 자리가 너무 깨끗했습니다. 웬만한 국립공원보다 더 질서 정연한 군립공원이었습니다.

사람의 도움을 받은 자연은 왕성한 복원력을 갖습니다. 숲은 울창해지고 물은 맑아졌습니다. 약간만 깊은 계곡에 들어도 완전히 원시림 같습니다. 바위를 가득 덮은 이끼, 아름드리 나무 사이로 이어진 덩굴식물, 바위 사이로 샘솟는 물…. ‘우리나라에도 이런 데가 있구나’ 할 정도입니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들, 그리고 경이로운 자연의 복원력을 새삼 실감한 기분 좋은 산행이었습니다.

/순창=글ㆍ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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