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새벽4시 평안북도 선천군 홍건도 포구엔 조용히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순종식(70)씨는 잠이 덜 깨 연신 하품을 해대는 올망졸망한 손자 손녀들을 끌고 장남 용범(46)씨의 목선 '대두8003'호에 조용히 몸을 실었다.다시 돌아오기 힘든 길이라는 생각이 표정을 잔뜩 굳혀놓았지만 겉모습은 평상시 같은 출어였다. 순씨는 입버릇처럼 "아버지 고향에 꼭 모시고 가겠다"던 듬직한 아들의 손부터 꼭 잡았다. 20톤 작은 목선에 21명의 목숨을 내맡긴 자유를 향한 '엑소더스'의 시작이었다.
▲이대로만 가면 남한이다
거친 파도를 가르며 목선은 전속력으로 서해 공해상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들 용범씨는 최단시간 북한땅에서 멀어지기 위해 항로를 중국 산둥(山東)반도쪽 정서향으로 잡아 배를 몰았다.
날이 밝으면서 여기저기 북한 어선들의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와 아이들을 선실과 어창 바닥에 납작 엎드리게 하고 태연히 고기 잡는 척했다. 17일 밤 마침내 북한수역을 벗어나 공해상에 도달한 것을 GPS를 통해 확인한 용범씨는 곧장 뱃머리를 남쪽으로 꺾었다.
'이대로만 가면 남한이다'라고 안심할 즈음 무심한 하늘은 초조한 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친 비바람을 휘몰아댔다. 어린아이들이 배멀미로 토할 것도 없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뒹굴었다. 어창 깊숙이 쌀이 있었지만 "최악의 경우를 대비, 조금만 참아보자"고 했다. 풍랑으로 출렁이는 검푸른 바다 속에서 목선은 가랑잎처럼 흔들렸다.
쇠이음새가 녹슬고 나무틈새가 벌어져 삐걱대는 배가 잘 버텨줄까라는 걱정을 북한 경비정의 활동이 오히려 뜸해질 것이라는 안도가 덮었다.
▲저기 태극기가 보인다
높은 강풍과 파도를 거슬러 얼마나 달렸을까. 잔뜩 흐려 불과 몇 백㎙앞도 식별하기 힘든 뱃머리 앞에 회색빛 철선이 다가들었다.
'중국경비정이 아닐까' 숨이 멎는 긴장감에 용범씨가 잡은 키가 땀으로 끈적해졌다. 이윽고 이들의 눈안으로 태극기가 확 들어왔다.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119경비정이었다.
용범씨는 용수철처럼 뱃머리로 튀어나와 두 팔을 흔들며 목을 놓았다. "북에서 왔습니다. 남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경비정에 옮겨진 가족들은 먹을 것부터 찾았다. 해경들이 끓여온 '라면'이란 것을 난생 처음 맛봤다.
자유의 포만감도 꿈처럼 함께 밀려들었다. 18일 오후6시20분. 덕적면 울도 서쪽 17마일 해상이었다. 이윽고 이들은 19일 새벽 4시 48시간 만에 꿈에 그리던 자유의 땅에 발을 디뎠다.
이동훈기자dhlee@hk.co.kr
■타고온 木船 살펴보니/ 쌀 2~3kg·감자등 비상식량 들어있어
19일 공개된 길이 15㎙, 폭 4㎙의 목선은 선체 곳곳에 목재로 된 곳은 벌어져 있고, 쇠로 된 부분은 녹이 슬어 상당히 노후한 모습이었다. 특히 모터나 연료통 등은 부식 정도가 심했다.
3평 남짓한 선실은 21명이 지내기엔 매우 좁은 모습이었다. 내부는 옷가지와 이불, 아디다스 가방, 폐 박스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부식창고에는 쌀 2~3㎏, 옥수수, 썩은 감자와 양파 등이 들어있었다.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피운 중국 및 북한 담배 3~4갑도 눈에 띄었다.
중국제 GPS와 어군탐지기, 라디오, TV 등도 설치돼 있었으며, 빗물을 담아먹기 위한 두레박 등이 발견돼 장시간 체류에 대비를 한 것으로 짐작됐다. 그러나 탈북 경위 등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메모지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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