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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책을 열고 걷다보면.../최은경씨 한국 첫 '베니스조각전'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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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책을 열고 걷다보면.../최은경씨 한국 첫 '베니스조각전'참가

입력
2002.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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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최은경(47)씨가 29일부터 10월 6일까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베니스건축비엔날레와 함께 개최되는 국제 조각ㆍ설치전 ‘OPEN2002’에 한국 작가로는 처음 참가한다.OPEN 전은 조각가 아르망, 세자르 등이 거쳐갔던 야외 조각전이다.

올해는 프랑스의 예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선정한 46개 국의 작가가 참가하는데 모두 여성 작가들이다. “여성 예술가가 세계와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전시의 큰 주제라고 최씨는 전했다.

폴란드의 막달레나 아바카비노비치, 프랑스의 니키 드 생팔 등과 가수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 등 세계적 명성의 작가들이 참가한다.

최씨의 출품작 ‘성스러운 것과 성스럽지 않은 것’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거대한 책 형태의 조각이다. 책의 겉면에는 루마니아 출신의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책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The Sacred and the Profane’이 영문으로 새겨져 있다.

관객은 회전문처럼 설치된 이 책 표지를 열고 문지방을 넘어서게 되어있다. 책 속은 텅 빈 공간이지만 책 날개 안쪽에는 거울처럼 맑은 스테인리스 판이 있어 관객들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다. 책의 뒷표지에는 거대한 바코드가 조각돼 있고 관객은 그것을 밀고 길의 저편으로 나서게 된다.

최씨의 이 작품은 15만 명으로 예상되는 OPEN2002의 관람객들이 지나다니는 가로수 길에 설치될 예정이다. OPEN202의 한국 큐레이터로 선정된 윤진섭씨는 “최씨의 작품은 인생에 대한 탁월한 은유”라고 평한다.

책을 가운데 두고 공간은 이편과 저편, 제목처럼 성스러운 것과 성스럽지 않은 것으로 나뉘어져 있다. 최씨의 ‘책’은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통과하기 위한 ‘문’인 셈이다. 윤씨는 “관람객은 이 거대한 책을 통과하면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과정에서 겪는 온갖 애환과 열락, 고통을 되새기면서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고 말한다. 삶의 경계선으로서의 책이다.

최씨는 최근 3~4년간 책을 주제로 한 금속 작업에 집중해왔다. 지난해 연 개인전은 모두 책과 관련된 작품으로 채워졌다. “책에 쓰여진 내용, 윤리와 정의 같은 것들이 과연 인간의 진정한 인간의 자유를 보장해주는가, 오히려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에서였다.

2000년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뮤지엄에서 열린 전시회에서는 성서로 상징되는 책을 파괴하는 내용의 설치작업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작가는 이화여대 조소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학교에서 수학했다. 88년 첫 개인전 이후 조각과 도예 작업으로 지난해까지 1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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