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가수들이 한국 가수들의 노래를 베꼈다고 해서 월드컵 직후 큰 화제를 불러모았던 사건(7월2일자 25면, 7월30일자 40면 보도)이 사실과는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이탈리아 가수들에 대한 표절 시비가 처음 등장한 것은 7월 1일. 작곡가 최준영의 기획회사인 제이엔터컴은 이탈리아 가수 밴디도가 이정현의 ‘와’(최준영 작곡)를 거의 그대로 베껴 불렀다며 법적 대응을 준비중이라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팀이 한국팀에 진 후 한국을 맹비난했던 당시 상황과 맞물려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제이엔터컴은 이어 29일 외국 가수들이 쿨과 김건모의 노래를 베꼈다고 추가로 발표했다.
치우페크가 쿨의 ‘슬퍼지려 하기 전에’(최준영 작사 작곡)를, DJ후커가 코요태의 ‘순정’(최준영 작곡)을 베꼈다고 발표한 것. 또한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김창환 작곡)도 가수를 알 수 없지만 표절 행위가 일어났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이탈리아 가수들의 역표절 사례로 규정돼 스포츠 신문과 방송의 질타를 받았다. 사실을 확인해보고 비난하자는 기사는 한국일보가 유일했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독자 제보로 확인한 결과 문제의 쿨과 김건모 노래는 국내 음반사인 록 레코드가 2000년에 발매한 ‘대한민국 댄스 베스트10’이라는 음반에 실렸던 곡으로 밝혀졌다.
이 음반은 한국 가요를 외국어로 번역해 외국인에게 부르게 한 것으로 음반해설에는 쿨의 노래를 부른 치우페크, 김건모의 노래를 부른 쉐인 맥코넬은 둘 다 미국의 세션 보컬리스트로 소개돼있다.
아직 다른 노래의 표절 경위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한국에서 발매된 노래를 표절로 몰아간 것은 제이엔터컴의 ‘작전’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제이엔터컴측은 “제보자가 이탈리아 곡이라고 했다. 나중에 국내발매 곡임을 알았지만 모든 것은 변호사에게 일임했다”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당초 표절을 인정했다고 밝힌 이탈리아 가수 밴디도에 대해서도 “현지가 휴가시즌이어서 별다른 진전이 없다”고 발뺌했다.
외국 가수를 이용한 베끼기라는 발상은 최근 가요계의 새로운 홍보 경향으로 자리를 굳히는 인상도 짙다. 힙합 가수 주석의 기획사인 마스터플랜은 16일 미국의 대표적인 힙합 가수 스눕 독이 주석의 노래를 표절했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13일 미국에서 발매된 스눕 독의 ‘헤이 유’가 7월 중순 발매된 주석의 ‘개전 2002’와 거의 동일하다며 법적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주석은 홈페이지에서 두 곡이 같은 곡(미국 가수 모멘츠의 ‘왓츠 유어 네임’)을 샘플링한 것이라고 공개했다.
그런데도 마스터플랜의 관계자는 “네티즌들로부터 주석이 스눕 독을 베꼈다는 말을 듣고 조사해보니 두 노래가 거의 동일하길래 일단 자료를 돌렸다”고 말했다.
표절이라면 외국곡을 베꼈다는 시비가 주로 등장했던 가요계에 외국가수가 우리나라 곡을 베꼈다는 것은 국내 작곡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낭보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 기쁨을 순수하게 향유하기엔 음반시장의 홍보전이 지나치게 교묘해지고 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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