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바다에서 엔진이 고장 났던 그 때를 어찌 잊겠습니까?”1987년 1월 어선을 타고 10명의 가족과 함께 탈북,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정착한 김만철(金萬鐵ㆍ62)씨는 21명의 탈북 가족 소식을 듣고 감회에 빠졌다.
무작정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나섰던 김씨에게, 어깨 넘어 배운 항해기술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고 때마침 풍랑을 만났을 때는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부산과 일본열도 사이에서 엔진이 고장 나 일본으로 넘겨졌을 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잠을 설쳤다.
“이번 탈북자들도 목숨을 파도에 건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라는 그는 “그렇게 건 목숨이 아깝지 않도록 한국 사회에서도 잘 적응하기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김씨의 이런 조언은 15년간 한국에서 겪었던 풍파가 성난 파도보다 덜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는 같이 일해보자고 접근한 사람들에게 2, 3번 사기를 당한 후 한동안 자신과 한국사회에 대해 절망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뒤 신앙생활에 몰두, 남해에 기도원을 세우기도 했던 그는 4~5년 전 경기 광주에 정착해 농사를 시작하며 안락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막내딸 광숙(29)씨는 탈북자 출신인 한용수(27)씨와 결혼해 화제가 됐고, 막내 광호(27)씨는 고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UCLA에서 우주공학을 공부하고 최근 귀국했다.
한편 97년 목제 어선을 타고 중국어선으로 위장, 가족 등 13명과 함께 탈북했던 안선국(安善國)씨는 지난해 폐암으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9살의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 왔던 막내 일영(13)양은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어머니, 언니, 오빠와 함께 잘 지내고 있다”며 “이번에 한국에 온 아이들이 친구도 많이 사귀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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