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각이 있어서인가. 연극할 때도 부드러운 역할은 못해봤어요. 거칠고 선 굵은 역만 해봤지.”악역에 이력이 붙은 듯 SBS TV 대하드라마 ‘야인시대’(극본 이환경, 연출 장형일)에서 일본인 형사 미와로 출연하고 있는 이재용(39)은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조선인 사상범을 검거해 모진 고문을 가하는 서울 종로서 고등계 경부 미와에게는 ‘악질’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주인공 김두한이 “언젠가 널 죽이고 말 것”이라며 이를 갈고 있는 대표적인 악역. 하지만 때론 코믹한 이재용의 연기로 마냥 그를 미워할 수도 없다. 낯선 얼굴 같지만 눈썰미가 있는 시청자들은 그를 쉽게 알아본다.
드라마 ‘피아노’(SBS)에서 조재현과 조인성을 괴롭히던, 역시 악역인 독사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가 바로 그였다. 연기 경력 20년째. 1982년 대학(부산대 철학과)에 입학한 그는 연극동아리 ‘극예술연구회’로 연기를 시작했다.
“아뿔사! 업(業)이 될 줄이야”라고 말했지만 부산 연극판에서 알아주는 배우다.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리어왕’ 등 무려 40여편의 무대에 올랐다.
서울 대학로에 진출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까? “문화의 중앙집중화를 피하고 지역문화를 살려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90년대 초반 잡지 ‘예술부산’을 발간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의 삶의 터전은 부산이다. ‘피아노’에 출연하게 된 이유도 부산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는 연기자였기 때문.
최근에는 연극보다 스크린에서의 활동이 활발하다. 삽을 골프채처럼 번호를 매겨서 휘두르며 상대를 위협한 ‘뚫어야 산다’의 조직폭력배 두목처럼 무게를 잡지만 코믹한 분위기가 풍겨나는 인물이 그의 단골 역.
전수일 감독의 독립영화 ‘내 안에 부는 바람’으로 영화에 데뷔했고, 곽경택 감독의 ‘억수탕’ ‘닥터K’ ‘친구’에도 출연했다. “‘친구’에서 장동건의 보스가 나였는데. 기억 못하다니, (기자님을) 블랙리스트에 올려야겠네요.”
그는 “드라마 ‘야인시대’는 촬영 순서가 스토리 흐름대로 가는 게 아니다 보니 감정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카메라 3대가 한꺼번에 돌아가는 스튜디오에서는 시선을 어디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아직 몸에 배지 않은 드라마 촬영방식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배역에 대한 이해는 철저하다. “표독스럽고 광적으로 집착하는 미와는 성격자체가 복잡하다. 전형적인 악역으로 비쳐지고 싶지는 않다”것. “악당도 했고, 망가질 대로 망가지는 코믹한 역할도 해보았죠. 그러니 그 중간쯤 되는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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