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이) 정말 더럽게 됐어.” 한나라당 L의원은 19일 최고위원회의가 민주당의 병역비리 규탄 1,000만인 서명운동 돌입에 맞서 권력 실세들의 각종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정권퇴진 운동을 결의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지막이 장탄식을 했다.그는 “상대가 있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꼭 이런 식으로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며 “난장판이 따로 없다”고 덧붙였다.
엄연히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데도 일반 국민을 상대로 서명운동에 나서겠다는 민주당의 결정이 무책임한 대중 선동 행위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렇지만 이를 이유로 한나라당이 정권퇴진 운동을 거론하며 근거라고 제시한 권력층의 ‘6대 비리 의혹’은 공당의 발표로서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온통 “모 인사가 최고 권력층의 해외재산을 관리한다는 의혹이 있다”, “민주당 모 실력자가 워싱턴에 사무실을 내고 이권에 개입, 천문학적 돈을 챙겼다는 제보가 있다”, “연예계 성상납을 받은 민주당 인사의 명단을 확보했다”는 식이다.
구성이나 내용이 증권가 정보지에 실린 풍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이 정도의 의혹 제기로 한나라당의 정권퇴진 주장에 고개를 끄떡여 줄 국민이 얼마나 될까.
한나라당은 의혹을 뒷받침할 사실을 국회에서 공개하겠다지만 실체적 진실을 얼마나 드러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의혹을 입증할 자신이 있다면 국회의 정상가동을 기다릴 게 아니라 당장 그 전모를 밝히는 게 옳다.
그런데도 굳이 국회로 미루는 것은 근거가 불확실한 의혹 폭로의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해 면책특권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족하다.
이래 저래 가을 정국은 무제한 의혹 공방에 휩싸여 그야말로 난장판이 될 게 뻔하다. 한나라당이 누가 이런 싸움을 걸어 왔는지에 집착하고만 있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원내 다수당의 모습에 어울리는 합리적이고 명분도 있는 대응 수단을 찾아야 한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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