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은 동양에만 있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서양에도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오랜 세월동안.설혜심(薛惠心ㆍ36) 연세대 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가 쓴 ‘서양의 관상학 그 긴 그림자’(한길사 발행)는 서양 관상학의 역사와 그것이 초래한 사회적 영향을 분석한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이집트 중국 등 고대 문명지역에서 사람의 생김새에 관한 이야기와 우화들이 많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볼 때 관상은 문명의 발생과 더불어 생겨났다”고 말한다. 관상은 그 뒤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관상학이라는 학문으로 자리를 잡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동물과 비교하고 신체의 특성과 성품을 추론했다. 가령 사각형 얼굴에 두터운 코를 지닌 사자는 용맹스러운 남성을, 작은 얼굴에 가슴이 좁은 표범은 여성을 상징했다.
이 때문에 남성의 우월성이 강조되던 당시에 ‘표범 같은 남성’으로 지칭되면 더할 나위 없는 모욕이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관상학은 큰 변화를 겪는다. 생김새보다 동작에 더 큰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눈을 자주 깜박거리면 배반할 가능성이 높고, 눈을 치켜 뜨면 참을성이 없다는 식이었다.
용변을 보면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지 말라는 등의 금기도 이때 생겼다. 저자는 “종교개혁 등을 통해 신분제 사회의 틀이 흔들리면서 타고난 생김새보다는 동작이나 외모를 가꾸고 규율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 뒤 관상학은, 사람의 이성이 심장이 아니라 두뇌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이 확산되는 19세기 초 두개골을 대상으로 하는 골상학으로 대체된다.
하지만 골상학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결혼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지 등을 입증받기 위해 취업과 결혼 때 회사와 예비 배우자에게 두개골 진단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범죄자 색출에, 2차 대전 때는 유대인 색출에 골상학이 이용됐다.
그러나 정확하지도 않고 사회적 악영향이 크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관상학, 골상학은 사라져갔다. 그렇다고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어서 심리학 범죄학 경영학 등에 침투, 변형된 형태로나마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관상학을 통해 사람들은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저자는 “사람을 구별지으려 했다”고 꼬집는다. 생김새를 통해 사람의 우열을 가리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서양인들은 과거에 관상학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저자는 “서양인들은 관상학이 합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았다고 생각해 감추고 싶어한다”라며 “제국주의 시대의 백인 우월주의나 최근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1997년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17세기 관상학자 리처드 샌더스의 ‘수상학서’를 우연히 접하면서 서양 관상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서양에서 관상학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유행했었나’하는 호기심에서 연구를 시작했다는 그는 서양 관상학에 대한 책이 세계적으로도 드물기 때문에 책을 영어로 번역, 해외에서도 내겠다고 말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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