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이어 전체 공무원의 34%인 30여만명이 주5일 근무제를 시험실시하는 등 주5일 근무시대가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주5일 근무는 국민의 생활패턴을 크게 바꿈으로써 산업 현장에도 지각변동을 가져오고 있다.관광ㆍ레저업계를 필두로 건설사, 자동차메이커, 디지털가전사 등이 벌써 특수를 누리는가 하면 노동집약산업인 제조업은 인건비 증가로 인해 경영난이 가중되는 등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사회적 가치의 무게중심이 전체적으로 일 중심에서 삶의 질 중시 쪽으로 이동하면서 경제의 지형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편집자주
■관광·레저업 함박웃음
주5일 근무의 테마는 단연 레저이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길게는 2박3일간의 휴가를 매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관광ㆍ레저업계는 바야흐로 ‘때’를 만났다.
▼대호황 맞는 관광업계
벌써 대도시 주변의 전원주택용 땅값이 큰 폭으로 뛰고 있다. 15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북한강변 남양주시 화도읍(팔당상수원 1권역)의 경우 평당 50만∼60만원에 거래되고 있고, 강과 근접한 곳은 최고 100만원을 호가하는 등 최근 무려 30~40% 폭등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평당 30만∼40만원선에 거래되던 인천 용유도 을왕리해수욕장 인근 자연녹지는 최고 130만원까지 3배 이상 뛰었으며, 제주는 조망권이 좋은 장소면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관광업계가 예측하는 국내관광 수요도 주5일 근무제 시행 여부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는 2003년과 2004년, 2005년 국내 관광객수(연인원)는 각각 3억4,000만명, 3억7,400만명, 4억명 등으로 매년 3,000만명 가량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주5일 근무제가 무산된다면 매년 1,000만명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관광협회중앙회 이성두 사무처장은 “특히 주5일 근무 시행 초기에는 답사형 및 체험형 국내 여행상품이 폭발적인 판매 신장률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관광시설 건설 붐
리조트와 콘도, 레저시설 등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는 불을 보듯 뻔한 일. “대기업들이 손쉬운 돈벌이를 하려고 소비성 레저산업에 매달린다”는 비판에도 아랑곳 않고 재벌들이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우리은행이 50계좌, 조흥은행이 50계좌, 산업은행이 20계좌의 콘도 회원권을 사들이는 등 은행권의 주5일 근무제 시행만으로도 콘도 사재기가 벌어지는 마당에 주5일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수요는 곱절 이상 뛸 게 뻔하기 때문이다.
SK그룹은 계열사인 ㈜정지원을 통해 골프장과 스키장 사업에 뛰어들었고, 삼성에버랜드는 경기 용인 에버랜드 부지 340만평을 추가로 개발, 종합리조트타운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한화리조트는 제주 봉개휴양림에 골프장과 대형 눈썰매장 등을 갖춘 종합리조트를 짓고 있다.
한솔개발도 콘도와 회원제 골프장 27홀, 퍼블릭 골프장 7홀 등의 시설이 갖춰진 강원도 원주의 한솔 오크밸리에 추가로 골프장 9홀과 스키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포스코건설과 삼성에버랜드, 쌍용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은 고급 전원형 단독주택단지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 특수의 확산
주5일 근무의 ‘소프트웨어’격인 자동차, 보안기기, 레저용품, 디지털기기 업계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첫 차를 살 때부터 고가의 레저용차량(RV)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7월말까지 RV 판매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33% 늘어난 30만2,682대로 전체 승용차 내수판매(16.5%)의 2배 수준에 육박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금융기관의 영업일이 줄면서 올해만 현금입출금기(ATM) 1만대가 새로 설치될 계획이다. 현재 국내에 설치된 ATM이 5만대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20% 이상 시장이 급성장하는 셈이다.
보안업체들은 내년 5월까지 공인인증서 사용이 의무화하는 금융권으로부터의 추가수요가 100억원 정도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안창준 소프트포럼 사장은 “주5일 근무제와 인터넷뱅킹의 확산으로 사용자 인증과 보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조만간 시장은 2~3배 정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中企 제조업은 죽을맛
“중소형 원사(原絲)업종 자체가 사라지게 생겼습니다.”
원사 제조업체인 동선합섬 서석홍 사장의 요즘 고민이다. 90년대 초만해도 이 공장의 직원은 520여명이었으나 지금은 고작 40명. 이마저도 외국인근로자 20명을 제외하면 40대가 최연소자이다.
“365일 쉬지않고 기계를 돌려야 하는데 젊은이들이 자꾸 떠나니 배겨낼 재간이 있습니까. 주5일 근무제까지 실시하면 인건비 부담이 대폭 늘어나 우리 같은 업체들은 한국을 떠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주 5일 근무제의 그늘은 특정 업종이 아니라 중소제조업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인쇄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 전문기업 청도DP&C상사는 2000년부터 ‘절뚝발이’ 경영을 하고 있다. 이 회사의 적정 근로자수는 35명선인데 3년째 27명으로 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감이 넘쳐나도 공장 가동률은 80%를 넘기 힘들다. 최중찬 사장은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들의 사정이 이런데도 ‘일 덜하고 돈 더 쓰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주5일 근무제는 일본처럼 십수년에 걸쳐 차근차근 도입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재계의 적, 주5일 근무제
‘주5일 근무제 반대’는 재계의 한목소리이다. 특히 중소기업계는 주5일 근무제 지연실시를 위한 사활을 건 ‘투쟁’을 다짐하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 인건비, 사회보험 등 비용이 19.8% 늘어나고 수출단가는 평균 15.8% 상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노동부가 추진 중인 단독입법안이 근로시간 단축(4시간분) 외에 연월차와 생리휴가 수당까지 보전해준다면 기업으로서는 20% 이상의 임금인상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거들었다.
▼주5일 근무제 보이코트와 역풍
사정이 이러하자 일부 공단에서는 주5일 근무제를 아예 보이코트할 태세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경인지역본부가 최근 남동공단과 부평, 주안공단 입주업체 중 605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업체의 86.2%인 522개사가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조사업체중 주 5일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전체의 2.5%인 15개사. ‘내년 이후 실시를 검토할 계획’이라는 업체는 남동공단 58개사, 주안공단 7개사에 머물렀고 부평공단은 단 한곳도 없었다.
사출업체인 명지정밀의 김상화 사장은 “이 제도가 노사정위의 합의도출에 실패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못했다는 반증”이라며 “명분도 없는 제도를 따르느라 도산하느니 법을 어기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고 말했다.
예기치 않은 주5일 근무제의 파편을 맞은 업종도 등장했다. 손해보험사들은 여행객 증가에 따른 자동차사고 증가로 인해 당장 경영에 큰 압박을 받게 될 처지다. 보험개발원은 계간지 보험동향’ 여름호에 게재한 ‘주5일 근무제와 자동차보험’이라는 보고서에서 요일별 사고발생변화 등을 감안하면 주5일 근무제 실시에 따른 손보사들의 부담은 연간 46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일본에서는 정부나 금융기관이 주5일 근무제를 가장 나중에 도입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을 위해 봉사해야 할 공조직이 먼저 나서 일감을 줄이려 하는 등 주5일 근무제 논의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태훈기자
■이래서 좋다/ "관광활성화 국토 균형발전"
주5일 근무제는 국민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경제적으로 광범위한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
특히 관광산업 분야는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다. 주5일 근무제로 국내관광 수요는 연평균 5,000만명 증가하고 국내관광 지출 순증 효과도 향후 5년간 13조4,4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 관광산업 발전은 고용 유발 효과가 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해 국토의 균형 발전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 여행수요 증가와 함께 여행 패턴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가족 중심형, 자기 개발형 여행수요가 늘어나고 저비용의 계획적인 여행이 자리잡을 전망이다.
먹고 마시기 위주의 유흥적 관광패턴에서 벗어나, 자기개발이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재충전 등 선진국형 여행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주5일 근무제에 따른 국내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는 숙박 및 여가시설 등 관광 인프라 확충, 다양한 관광 프로그램 개발, 문화관광시설 종사 전문인력 육성, 계층간 관광불균형 등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김용현 한국관광공사 국민관광처장
■이점이 안좋다/"경쟁력 약화로 中企 줄도산"
주5일 근무제가 전반적으로 실시될 경우 기업의 경쟁력은 크게 떨어진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53.5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인 44시간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법정 근로시간의 단축은 노동비용의 증가와 인력난의 심화로 이어져 결국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생산감소, 나아가서는 중소기업의 연쇄도산 사태를 야기시킬 수 있다.
법정근로시간 단축으로 실근로시간이 줄어들어도 생산성 향상으로 근로시간 단축분을 보완할 수 있다는 분석이 주5일 근무제 도입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자주 인용되고 있으나 이는 중소기업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현행 휴가제도를 그대로 두고 주5일제를 실시하면 연간 총 휴일수가 선진국인 일본보다 많게 되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정부는 주5일 근무제 실시에 앞서 중소기업이 적어도 현 생산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각종 설비투자 지원 및 비용부담 완화대책을 수립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
/홍순영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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