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4ㆍ5대 국회를 취재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사건은 1958년 5월12일 실시된 4대 민의원 총선거다. 자유당이 저지른 대표적인 부정선거였다.당시 경북 영일 을구에서는 불법과 폭력이 난무한 가운데 자유당 후보가 당선됐다. 그러나 민주당 김상순(金相淳) 후보가 당선 무효소송을 냈고 결국 9월19일 재선거가 실시됐다.
나는 이를 취재하려고 영일로 내려 갔다. 그 곳에서 민주주의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손에 흰 붕대를 감은 깡패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들은 야당측 운동원은 물론 취재 기자들에게도 공갈과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냉정할 정도로 올바른 투표를 했다. 투표가 끝나고 1,000여명의 유권자와 수십 명의 무장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표가 시작됐다. 그토록 심한 부정 투표 행태가 있었음에도 막상 뚜껑을 열자 처음부터 자유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이상한 기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감지됐다. 표차가 갈수록 벌어지자 개표 종사원들의 동작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날이 샐 때까지도 개표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개표 종사원들이 피로하니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표를 중단합니다.”
오후 6시로 시간을 늦춘 건 뻔한 수작이었다. 어두워야 뭔가 일을 꾸밀 수 있지 않겠는가. 눈치를 챈 야당측이 항의하자 개표 속개 시간이 오후 4시로 앞당겨 졌지만 개표 종사원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개표를 미루려고만 했다.
결국 개표는 날이 어둑어둑해 지기 시작한 오후 7시10분쯤에야 속개됐다. 나는 개표장 안팎을 부지런히 오가며 취재했다. 이미 개표된 표는 자유당 표와 민주당 표를 나눠 쌓아 놓았는 데 한 눈에도 민주당 표가 훨씬 많았다.
개표 속개 후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개표장의 전기가 나갔다. 두어 차례 정전이 됐다 말았다 하더니 세번째는 아예 한동안 전기가 끊겨 버렸다.
불이 나가자 마자 깡패들이 소리를 지르며 개표장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민주당 조재천(曺在千) 대변인의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표 도둑이야, 표 도둑이야.”
기자석에 앉아 있던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당시 내 나이 스물 일곱, 무서울 게 없었다. “야, 이 도둑놈들아.” 소리를 지르며 뛰쳐 나간 나는 민주당 표가 쌓여 있는 곳으로 가 양팔로 표를 감싸 안았다.
취재를 하는 것보다 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내 등과 머리 위로 깡패들의 주먹과 발이 날아 오기 시작했다.
나중에 전기가 다시 들어 온 뒤에 보니 쌓여 있던 민주당 지지표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어림짐작으로도 3,600여 표나 되는 분량이었다.
온 몸이 쑤시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마음이었다. 나는 담배를 한대 피워 물고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 때 누가 간식으로 기자석에 사과를 가져 왔다.
순간 나는 내 분에 못 이겨 사과를 개표소 안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야, 이 뻔뻔스러운 도둑놈들아.” 개표 결과는 뻔했다. 자유당 후보가 300여 표 차로 당선됐다.
서울로 올라온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개표 방해라는 선거법 위반 혐의였다. 조병옥(趙炳玉) 박사가 귀띔을 해 주었다.
“조금 전 자유당 간부회의가 열렸는데 자네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키로 했다고 하네. 빨리 피해 며칠간 숨어 지내게.”
표 도둑놈은 놔 둔 채 사과를 던졌다고 개표방해죄라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하는 수 없었다. 나는 친구와 친척집으로 몸을 피했고 얼마 뒤 구속 방침은 없었던 일로 됐다. 동료 정치부 기자들이 거세게 행의했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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